조직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의견 대립
의견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이것이 오히려 조직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측면이 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은 혼자 만들 수 없었던 무언가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의견 대립은 그래서 조직에는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의견 대립 없이 좋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오히려 상반된 의견을 듣고 여러 대안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이유
2008년 리먼 브라더스는 팀워크와 충성심이 강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2006년 포천이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화목한 기업’ 중 하나로 지목했을 정도다. 이렇게 탄탄한 조직이라면 위기도 잘 극복했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파산했을까. 기업의 파산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외부 충격이 제일 컸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주택 담보 채권의 가격 하락 등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조직 문화다. 팀워크와 강한 충성심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것을 거꾸로 해석하면 사내 불화가 용인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바꿀 수 있다.
충성 어린 동료들 때문에 다른 의견이 있어도 팀워크를 생각해 반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이었고 웬만하면 그대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충언했지만 해고된 직원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기준금리가 1.75%에서 5.25%까지 올랐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고 주택 담보 대출에 과다하게 노출됐던 미국 투자은행들이 흔들렸다. 위태롭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됐다.
2006년 고정 자산 부문 글로벌 책임자였던 마이크 겔벤드가 최고경영자(CEO)에게 충언했다. 하지만 그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한 딕 펄드 전 리먼 브라더스 CEO는 겔벤드를 해고해 버렸다.
이후 충언하는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모두가 알면서도 공론화하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했다. 그래도 세계에서 넷째로 큰 금융회사였던 리먼 브라더스까지 무너질 줄은 몰랐다. 문제는 강한 충성심과 팀워크가 조직이 아닌 개인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보스인 딕 펄드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쳤다. 누구도 대립되는 의견으로 평화를 깨뜨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2008년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다.
악마의 변호인 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구성원의 마음가짐'
의견 대립이 없을 때 조직이 나쁜 방향으로 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조직에 순응하려는 경향이다. 조직에서 특정 의견이 채택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의견의 단점이나 다른 대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우르르 따라간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 예일대 교수는 이 현상을 ‘집단 사고’라고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다.
둘째 이유는 공유 정보 편향이다. 집단 내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잘 알 것이라고 가정하면 그 누구도 질문하거나 반기를 들지 않는다. 결국 조직에서 공유되는 정보는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고 토론은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제니스 교수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는 제도를 제안한다.
많이 들어봤 것이다. 회의 시작 전 특정인에게 반대자 역할을 의도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이다. 팀의 화합을 해치지 않으면서 의견 대립이 주는 장점도 누릴 수 있다. 한국에서도 몇몇 기업이 이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문제점이 내재돼 있다. 샬런 네메스 버클리대 교수에 따르면 이 제도가 이론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마의 변호인은 하나의 역할극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여서 사람들은 건성으로 듣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사자조차 반대하는 척하다가 나중에 반대 깃발을 슬그머니 내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조직 구성원들의 심리다. 자신들은 편협한 생각을 막기 위해 예방 주사를 한 방 맞았다는 생각에 오히려 원래 의견에 안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네메스 교수의 실험
그래서 네메스 교수는 좀 미묘한 실험을 했다. 첫째 실험 조건은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둘째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나서 실제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양쪽 모두에서 의견 대립은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왔다. 반대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도 일부 나타났다. 하지만 자발적인 조건에서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졌고 더 창의적인 해결 방안이 만들어졌다. 동일한 사람이었고 동일한 근거였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역할극의 경우 리스크가 적고 책임감도 없는 반면 자발적 반대자에게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사람들이 인지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사람의 용기와 취약성에 참가자들은 오히려 마음을 열고 풍부하게 의견을 교환하더라는 것이다.
즉 위험을 무릅쓰고 진심으로 반대하는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게 된다.
사람들은 의견 대립에 흔히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만큼 자신의 의견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논쟁에서 이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의견 대립이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을까’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산적인 의견 대립은 철학의 문제가 아니다. 잘 훈련된 습관이고 기술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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