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통과와 함께 우리나라 미래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확전 일로로 치닫으며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 이어진 미중 무역전쟁 역시 우리나라에게 고질적인 악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저마다 자국 이익에 골몰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혁신을 통한 초격차 확보와 더불어 전략적 미래산업 육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향후 ICT 분야에 대한 전략적 투자 및 계획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하 IITP)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초격차에 도전하다’라는 주제로 서울 엘타워에서 디지털 기술혁신 학술회의 ‘기술과 미래(Tech & Future) Insight concert’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국내외 디지털 정책 현황을 진단하고 새정부의 디지털 기술혁신 및 확산전략을 살펴보는 오전 세션과 인공지능(AI), AI반도체, 6G, 양자정보통신, 메타버스, 사이버보안 등과 관련된 각 기업 및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오후 세션으로 진행됐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오전 세션으로 진행된 새정부의 디지털 연구개발 정책인 ‘디지털 기술혁신 및 확산전략’과 6대 전략분야별(인공지능,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 5세대 및 6세대 이동통신, 확장가상세계, 사이버 보안) 2023년 연구개발 투자 방향에 대한 내용이었다.
세계는 지금 디지털 기술 전쟁에 돌입했다
“지금 바야흐로 세계는 전쟁입니다. 과거에 했던 무력전쟁이 아니라 기술을 가지고 그 해게모니를 잡으려고 하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계는 세상의 삶을 바꾸는 디지털 기술에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굉장히 쉽지 않은 상황이 이렇게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압도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모든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은 이미 2018년부터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앞질러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주력 제품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의 점유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이에 새정부의 전략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바탕으로 마련됐습니다.”
행사의 첫 발표를 맡은 윤두희 과기정통부 정보통신방송기술정책과장은 ‘디지털 기술혁신 및 확산전략’을 주제로 한 발표 첫마디부터 쉽지 않은 글로벌 상황을 언급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는 지난 5년간 연평균 7.6%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다.
윤 과장은 “이러한 투자가 가능했던 것은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 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그간 정량적 성장은 글로벌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앞으로는 질적인 부분을 신경쓰는 연구개발이 진행돼야 한다”며 우리나라 디지털 연구개발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이른바 기술 전반에 걸친 백화점식 투자, 단기적 지원으로 인한 실용적 활용·기술축적의 한계, 기술이전 성과 약화, 디지털분야 고급인재 부족 상황 등이다.
윤 과장에 따르면 새정부는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분석 후 선택과 집중을 통해 AI, AI반도체, 양자기술, 메타버스, 사이버보안, 5G·6G의 6개 분야를 대상으로 집중 육성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윤 과장은 이러한 정책 기조의 바탕으로 새 정부가 줄 곳 강조해온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 방식을 강조했다.
“6개 분야는 사실 우리 뿐 아니라 강대국들이 패권을 확보하려 하는 분야입니다. 그것을 정부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기술 방식 등을 선정해서 끌고 가기 보다 해결해야 할 명확한 문제를 지정해서 미션 오리엔티드(mission-oriented), 즉 임무 지향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윤 과장의 말인 즉 정부는 6개 분야에 대한 구체적 미션만을 정하고 그 해법은 민간이 제시하는 방식을 육성·지원하겠다는 셈이다. 윤 과장은 과거처럼 단기적인 정부 과제를 기업이 수행하면 끝나는 것이 아닌 가능성 있는 기업이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고 지속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른바 ‘초기시장조성>사업화 촉진>기업성장 가속화 로드맵이다.
발표 말미 윤 과장은 “IMF 시절 우리나라가 브로드밴드로 디지털강국이 됐듯, 이번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도 6개 분야에 집중 투자를 통해 또 하나의 성공 스토리가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2023년 6개 분야 총 1조5810억원 투자한다
새정부의 내년도 6개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문형돈 IITP기술기획단장이 ’2023년 ICT R&D 투자방향’을 주제로 한 발표로 이어졌다.
문 단장은 “우리나라 ICT 자체는 수출비중에서도 35.3%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전 산업의 무역수지 흑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GDP의 10%를 차지할 정도의 명실상부한 국가 주력 산업이고 우리 경제를 선도해 오고 있다”고 강조하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올해 우리 ICT 분야 연구개발 역량을 중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학술적 성과를 볼 수 있는 논문 피인용 수에서는 7위, 기업들의 기술력을 간접 평가할 수 있는 삼극특허 등록 피인용 수는 3위, 인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 영향력은 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어떻게 될까? 문 단장의 발표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의 ICT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약 1조5819억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1854억원, 13%가량이 증가한 수준이다. 분야별로 보면 기술개발에 1조원, 인재양성에 3000억원, 기반조성과 사업화에 2000억원가량이 투입될 예정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기술개발에 할당되는 1조원 중 약 80%가량인 7800억원 정도가 앞서 강조된 6개 분야에 투자된다는 점이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AI 분야의 경우 ‘AI 초일류 기술강국으로 도약’이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AI 기술 분야의 최고 기술력 축적을 통해 의료, 금융, 제조 등 공공 산업 분야에 난제를 해결하고 산업 혁신과 관련된 AI 방법론을 10건 이상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문 단장은 “딥러닝 기반의 AI 한계를 극복하고 난제 해결을 위한 임무지향형 AI 원천 기술을 확보할 것”이라며 “챌린지 대회 기반의 경쟁형 연구개발로 AI 연구를 확산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최근 우리나라 AI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는 ‘소량의 데이터로 스스로데이터 생성 학습이 가능한’ 차세대 AI 기술 개발도 포함 돼 있다. 그 외에 구체적인 난제 해결 과제로는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이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엑사 스케일급 초거대 AI 컴퓨팅 기술 등과 같은 초고효율 AI 컴퓨팅 기술 개발 등이 추진된다.
다음으로 AI반도체의 경우 ‘AI반도체 3대 기술 강국 진입’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기술 분야 경쟁력을 최고국 대비 95.3%이상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글로벌 수준의 원천특허, IP, 제품을 확보하는 글로벌 혁신 기업을 3개 이상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는 ‘AI반도체 첨단 기술력 확보’ ‘국산 AI반도체 적용 제품·서비스의 실증·확산’ ‘산·학·연 Co-Innovation을 촉진하는 혁신 생태계 조성’ 등의 세부 방향으로 추진된다
세 번째로는 5G·6G에 대한 내용으로 ‘세계 최고 디지털 인프라 강국 실현’을 비전으로 하고 있다. 이는 2026년까지 51개 분야 분야와 관련된 ‘Pre-6G 기술 개발 및 시연’, 6G 표준특허 135건 및 상용화 기술 69개 확보를 중장기 목표로 하고 있다.
양자 기술의 경우 정부는 ‘2030년 양자기술 4개 강국 진입’을 비전으로 세우고 양자중계기 기반의 양자 ‘아르파넷(ARPAnet)’ 개발 및 실증, 세계 탑티어 양자센서 기술 3개 이상 확보를 통한 국가전략 및 첨단산업 양자 센서 플랫폼 개발 등을 중장기 목표로 수립했다. 이와 관련 문 단장은 “중장기적으로 양자 인터넷, 양자 통신 센서, 관련 자립망 구축에 1조원 정도가 투입될 수 있도록 예타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문 단장의 발표에서 관심을 끈 또 다른 분야는 다름 아닌 ‘메타버스’ 였다. 정부는 ‘세계 최고 메타버스 서비스 기술 강국 실현’을 비전으로 삼고 최고국 대비 90% 이상의 기술력 축적과 더불어 메타버스 기반 글로벌 컨벤션 실증, 즉 킨텍스 규모인 10만㎡ 대상 디지털화를 중장기 목표로 설정했다.
문 단장은 “이를 위해 올해 홀로그램 핵심기술 개발, 5G 기반의 VR/AR 스마트 글래스 기 개발, XR 콘텐츠 제작을 위한 고속·고품질 자동화 기술 개발 등에 900억원 정도가 투입됐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메타버스 핵심기술을 도출하고 다양한 실증 서비스를 추진하는데 총 3000억원 규모의 예타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정부는 사이버 보안 분야 역시도 ‘국가 사이버 안전 및 보안 핵심 기술 확보’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보호, 탐지, 대응 사이버 방어기술 축적과 능동적 사이버보안 중장기 핵심기술 선제적 확보를 중장기 목표로 추진한다.
문 단장은 “이를 위해 국가 ICT 및 핵심 기간망 보안 등 국가 인프라 보호 강화를 비롯해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사이버범죄, 교통·해상 등과 같은 공공 서비스 보안에도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진행 될 것”이라며 “2025년까지 능동적 사이버 보안 원천 기술 개발, 2030년까지 사이버전에 대비한 방어체계 확보를 위한 투자가 예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두 번째 세션에서는 6대 전략분야별 국내외 동향 및 기술의 실제 사례와 발전방향 중심으로 전문가 발표가 이어졌다. 이종미 마인즈랩 부사장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나가는 통합 인공지능 서비스 시대’를,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세계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 동향에 따른 우리의 전략 방향’을, 최경일 케이티샛 전무는 ‘6세대 이동통신으로 맞이하게 되는 소통의 시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이어서, 고려대학교 허준 교수는 ‘양자정보통신 기술이 열어갈 새로운 시대’를, 광운대학교 유지상 교수는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하나의 큰 축인 확장가상세계’를, ㈜크립토랩의 김정우 박사는 ‘총성 없는 사이버전쟁과 대응방안’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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