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의 급상승을 예견하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월가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품으로 등록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2024년 내에 비트코인 가격이 10만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말 역시 심심찮게 나왔고 결국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업계의 예측처럼 비트코인을 비롯해 이더리움의 현물 ETF가 승인됐고, 미국 대선에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 또한 급상승의 동력이 됐다.
이제 업계는 10만달러를 찍었던 비트코인이 올해 다시금 20만달러 고지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고 있다. 대놓고 친가상자산 정책을 천명한 트럼프 2.0 시대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시대의 미국은 달러 중심의 서방경제에 반기를 들며 탈(脫) 달러 경제 블록화를 꾀하고 있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를 상대해야 한다. 지난 1기 당시 미중 갈등을 넘어서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한 경제전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그런 트럼프와 미국의 무기가 가상자산, 그 중에서도 비트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글로벌 정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지난해에도 지적된 문제들이 여전히 급변하는 상황 대응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돌발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혼란 속에 모든 정책적 대응이 사실상 올스톱되며 격동기 가상자산 분야의 사업 기회를 대부분 외국 기업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비트코인의 전략 자산화에 나서나?
트럼프 2.0 시대가 되면서 바이든 정부에서 고수했던 여러 정책 중 상당 부분이 급선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기정 사실화된 것 중 하나가 이른바 ‘프로크립토 정책(Pro-Crypto Assets)’으로 불리는 친가상자산 정책이다.
업계에서는 대선 경선 당시부터 가상자산 규제 완화를 천명한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미국에서부터 은행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 당선 전후 자산운용사들은 앞다투어 솔라나, 리플, 인덱스 ETF 등을 신청하며 이들 코인의 가격까지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시작된 가상자산 상승 랠리가 급기야 알트코인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은 바이든 정부 하에서 겐슬러 위원장이 이끄는 SEC(증권거래위원회)가 주도한 가상자산 과잉 규제, 이른바 ‘안티크립토’를 전면 해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오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맞춰 안티크립토 정책을 진행해온 겐슬러 위원장을 비롯한 SEC 위원의 줄 사임이 이어졌고, 크립토 관련 법적 명확성을 개선하는 입법이 진행 될 예정이다. 이러한 미국의 규제 완화 및 입법 사례는 다른 많은 나라에서 참고할 사례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으로 대선 당시 비트코인을 통해 미국을 디지털자산 1등 국가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단순히 표심을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이끌 주요 인사들의 면면이 드러나며 진심으로 확인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트럼프 당선에 1등 공신이자 이른바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으로 임명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의 경우 대표적인 비트코인, 도지코인 지지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초 진행된 블록페스타(BLOCKFESTA) 2024에서 연사로 나선 이용재 미래에셋 수석 매니저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멤버들이 대부분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며 “대선과 함께 진행된 상하원 선거에서 당선된 총 545명 중 56%인 300명 이상의 의원이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입장”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친가상자산 정책과 입법의 의회 통과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향후 가상자산 관련 여러가지 정책과 입법이 진행될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비트코인의 전략자산화다. 이는 이미 미국 상하원에서 발의되고 있는 ‘비트코인 비축 법안’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향후 5년간 매년 최대 20만 비트코인을 매입해 총 100만 비트코인을 확보하고 이를 20년 동안 보유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탈(脫) 달러 경제 블록화를 꾀하고 있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브릭스 경제는 달러 중심의 글로벌 경제 체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비트코인을 무역 대금 결제에 사용하며 전략자산화를 꾀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브릭스의 시도에 약 40개국에 달하는 글로벌 사우스(북반부 적도 인접지역과 남반구의 신흥국, 개발도상국)가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급기야 트럼프 당선인은 브릭스를 향해 “달러에서 벗어나려 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갈라파고스로 전략한 한국 크립토 시장,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가상자산을 두고 이렇듯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정세 상황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일까?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한국은 대통령의 돌발 계엄과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대부분의 법적, 정책적 대응이 사실상 올스톱 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가상자산 격동기의 기회를 모두 외국 기업에게 빼앗기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 이에 지난달 초 개최된 블록페스타 2024는 국회의원, 금융투자업계, 가상자산업계, 법조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상자산의 미래와 규제 혁신 방안, 금융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이석우 두나무 대표, 박용범 한국블록체인학회장(가상자산위원회 민간위원),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 김재진 닥사(DAXA) 상임 부회장,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등 국내 연사 뿐 아니라 비트멕스(BitMEX)의 공동 창립자 아서 헤이스(Arthur Hayes), 솔라나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로라 막다(Laura Makdah) 등이 연사로 나선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한때 세계 1위였던 한국의 크립토 시장이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며 시급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날 첫 세션은 ‘전통금융이 바라본 가상자산 혁신과 금융으로서의 변화’를 주제로 한 토론으로 진행됐다. 패널로 참석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상자산 용어의 문제를 지적하며 ‘코인실명제법’ 필요성을 언급했다.
“가상자산에서 ‘가상’이라는 단어로 인해 자산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디지털 자산이라고 하는 것이 시대에 맞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법령을 바꿔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자산의 경우 차명 거래를 원천 차단하는 실명제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STO(토큰증권) 관련 논의가 21대 국회에서 통과 못되고 22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서 회장은 “STO와 관련해 많은 증권사들이 준비하고 있고, 이미 혁신금융 서비스를 통해 부동산과 음악 저작권 등에 일부 적용이 되고 있다”면서도 “법적 서포트를 못 받는 상황이 문제”라며 자본시장법, 전자증권거래법 등의 통과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진 키노트에서는 박용범 한국블록체인학회장이 ‘디지털자산의 도전과 진화’를 주제로 나서 가상자산의 안전한 운용을 위한 방안으로 스마트 컨트랙트, 데이터 무결성, 접근 제어 등 기술 적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비트코인 ETF와 토큰화된 금융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이용재 미래에셋증권 매니저는 “전 세계 GDP의 약 10%가 블록체인 기반 자산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며 전통 증권과 가상 증권이 모두 토큰화되는 추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이 매니저는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의 결합 움직임을 소개하며 비트코인 ETF를 통해 기관 투자자들의 시장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 미국의 정책적 영향력이 글로벌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의회 다수가 가상자산 우호론자들로 채워진 사실을 언급하며 행정부와 의회가 함께 가상자산 제도 설계가 가능한 환경이 됐음을 강조했다.
특히 발표 말미 이 매니저는 미국 금융 혁신의 순간에 대부분 블랙록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자본 시장이 ‘에셋 토크나이제이션(Asset Tokenization, 실물자산 토큰화)’과 비트코인 ETF와 같은 ‘뉴 에셋 클래스(New Asset Class)’라는 두 테마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 두 테마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향후 미국에서는 큰 문제가 없고 시가총액 유동성이 풍부한 코인에 대한 현물 ETF 승인에 장애물이 없어질 겁니다. 또 향후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일상화 되면서 5년 내에 전통 증권을 포함한 모든 증권이 토큰화되는 단계에 갈 것이라고 봅니다.”
이어 이날 행사에서는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오유리 DSRV CLO・홍푸른 디센트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장두식 빗썸 시장감시실 실장 등이 참여한 패널토론을 통해 가상자산 산업 활성화를 위해 코인 거래 수수료 중심의 거래소 비즈니스 모델 외에 페이먼트, 금융 상품 부재에 대한 문제 의식이 공유됐다. 토론에서는 가상자산 거래량이 3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임에도 관렬 법 제정이 늦어지며 주도권을 해외 시장과 기업에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이날 원격으로 행사에 참석한 세계 5위권의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멕스(BitMex)’ 창립자 아서 헤이즈(Arthur Hayes)는 “한국의 1인당 가상자산 평균 거래량은 세계 어느 곳보다 높다”며 가상자산 분야에 있어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2024년 비트코인이 10만 달러 전후로 마감할 것이라는 말을 여러 번 한 바 있다”며 향후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아마도 다음 질문은 비트코인이 향후 어디까지 갈 것이냐겠죠. 저는 세계적으로 더 많은 가상자산이 발행되는 것이 추세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트코인 역시 향후 5년내에 100달러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아서 헤이즈는 “AI가 이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가상자산, 특히 비트코인은 ‘인공지능의 화폐’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