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 키운다 "韓 의존서 탈피"

‘더 이상 한국, 중국, 일본 아시아 3국과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전세계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유럽연합(EU)이 역내 배터리 생산 능력 키우기에 시동을 걸었다. 이는 배터리 공급망 유통 비용을 크게 떨어뜨려 유럽 역내에서 생산 판매되는 전기차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EC(유럽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3월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2025년까지 이미 배터리에 관한 한 자동차 제조사들의 모든 산업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자급자족 의지와 자신감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그는 “그때가 되면 유럽의 기가 팩토리에서는 700만~800만 개의 배터리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우리가 현재 예상하는 전기차용 배터리 물량보다 많다”고 말했다. 세프코비치 부위원장은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부 장관,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부 장관과 배터리 동맹에 관한 회담을 마친 뒤 티에리 브레턴 EU 내부시장 집행위원과 함께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유럽연합(EU) 역내에 무려 38개의 기가팩토리를 건설하자는 계획 아래 이를 진전시키려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역내 배터리 공장 증설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에 필요한 배터리를 현지에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중국, 미국 중심의 아시아 배터리 의존도를 줄여 나간다는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연합은 지난 2017년 유럽배터리 동맹(EBA)을 결성했고 올들어 유럽내 전기차 배터리 자급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 (사진=EU)

물론 당장 우리나라와 중국 중심의 아시아와 미국 테슬라의 자동차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기는 쉽지 않으리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유럽이 세계 자동차 배터리 생산축으로 부상하기 시작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유럽의 배터리 독립 계획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EU, 유럽에 38개 배터리 공장 세운다

비정부 기구인 교통과 환경(Transport & Environment)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현재 38개의 기가팩토리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연간 총 생산량은 1000기가와트시(GWh)이며, 건설 비용으로 약 400억 유로(480억 달러)를 염두에 두고 있다.

T&E 대변인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2029~2030년까지 이같은 연간 공급량에 이르게 될 것이며 이는 전기차 1670만 대분의 배터리에 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컨설팅 회사인 롤랜드 버거의 배터리 부문 분석가인 에릭 커스테터는 “엄청난 수요 증가세를 감안할 때 제조업체들이 배터리 제조사들의 과점을 타개하면 상당한 지분이 눈앞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또한 배터리의 가격과 가용성을 결정할 전극(양극과 음극) 소재에 확실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웨덴 노스볼트는 유럽내 배터리 생산을 선도하는 업체 가운데 하나다. 스웨덴 스켈레프테오에 있는 노스볼트 제 1기가팩토리는 폴크스바겐의 수요 증가에 따라 40GWh에서 60GWh로 증설될 예정이며 올연말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 노스볼트의 가장 중요한 계획은 오는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연간 배터리 생산량을 최소 150GWh로 늘리는 것이다. (사진=EBA)

스웨덴 배터리 스타트업 노스볼트(Northvolt)는 오는 2030년까지는 연간 150GWh 용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공장 하나를 건설 중이고 훨씬 더 큰 두 곳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이 회사는 앞서 오는 2024년 연간 배터리 생산 용량이 전기차 60만대 분인 32GWh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T&E는 또 다른 보고서에서 정책 입안자들이 더 엄격한 CO₂ 감축 목표와 자동차 충전을 위한 기반 시설에 대한 더 강력한 지원을 한다면, 배터리 전기 자동차는 2035년까지 EU 27개 국가의 모든 신규 전기차 판매량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업체들과의 경쟁 시작됐다

▲유럽이 자동차 배터리 자급을 하려면 배터리 원자재 공급이 필수적으로 전제된다. EC는 2030년까지 리튬 수요가 18배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코발트 수요는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은 중국 선전 시니어 테크놀로지 머티리얼이 오는 2025년까지 스웨덴 에스킬스투나에 있는 스비스타 산업 단지에 2억 5000만 유로(약 3359억원)를 투자해 준공하는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 소재 생산 공장. 이 회사는 노스볼트에 소재를 공급할 계획이다. (사진=EBA)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들어 화석연료 차량 퇴출 압력을 받고 있는 자동차 업체들이 부쩍 배터리 생산에 돈을 쏟아 붓는 모습이다.

독일 폭스바겐은 6월초 스웨덴 노스볼트(Northvolt)에 5억유로(6억2000만달러)를 투자해 지분 20%를 인수한 데 이어 배터리 공장 5곳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개최한 파워데이에 맞춰 전 세계에 배터리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공장 증설 계획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유럽에 6개의 공장(투자회사 포함)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각각 40GWh 용량을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두 곳은 독일의 잘츠기터와 스웨덴의 스켈레프테오(Skellefteå)다. 게다가 폭스바겐은 이미 차세대 고체 배터리에도 눈을 돌려 미국 새너제이에 있는 배터리 스타트업 퀀텀 스케이프(QuantumScape)에 3억달러를 투자해 놓고 있을 정도다.

노스볼트의 가장 중요한 계획은 오는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연간 배터리 생산량을 최소 150GWh까지 늘리는 것이다. 이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회사는 독일에 있는 공장을 포함하여 최소 두 개의 추가 배터리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9일 유럽배터리 생산 가속화를 위해 27억 5000만달러(약 3조 10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2030년까지 150GWh의 배터리 생산용량을 갖출 계획이다. 기존 투자자인 골드만삭스, 폭스바겐, 스웨덴 계 연기금 AP1-4, 캐나다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OMER 외에 다수의 신규 투자자가 참여했다. 지난 2016년 설립된 노스볼트의 총 투자 유치 규모는 65억달러에 이른다. CNBC는 노스볼트의 평가액이 117억 5000만 달러(약 13조 26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노스볼트는 이미 폭스바겐, BMW와 주요 배터리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BMW와 23억 달러의 배터리 계약을 맺었고, 올해 3월에는 폭스바겐과 10년간 140억 달러(약 15조88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른 노스볼트의 총 계약고는 270억 달러(약 30조6200억원)에 이르렀다. 눈에 띄는 고객으로 스웨덴의 대형 트럭 제조업체인 스카니아와 에너지 저장 회사인 플루언스(Fluence)도 있다. 스웨덴 스켈레프테오에 있는 노스볼트 제 1기가팩토리는 폭스바겐의 수요 증가에 따라 40GWh에서 60GWh로 증설될 예정인데 올연말 생산을 시작한다.

▲폭스바겐이 지난 3월중순 열린 파워데이에서 오는 2030년까지 40GWh 배터리 생산 용량을 가진 기가팩토리 6개를 준공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폭스바겐)

크라이슬러, 알파 로메오, 시트로엥, 닷지, 피아트 같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프랑스-이태리 3국 다국적 기업인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에너지 거인 토탈(Total)과 제휴해 오토모티브 셀 컴퍼니(Automotive Cells Company)라는 이름의 배터리 조인트벤처를 설립했으며, 프랑스의 두브랑(Douvrin), 독일의 카이저슬라우턴(Kaiserslautern)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중이며,

전기차 선구자 테슬라는 2030년까지 250 GWh의 용량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중 하나가 될 미래 배터리 공장을 유럽에 건설할 계획이다.

유럽 각국 정부는 유럽 대륙이 미래의 자동차 제조에서 주요한 역할을 유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역내 배터리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배터리 제조사의 유럽투자도 가속

유럽 자동차업체들의 전기차 판매 급증 흐름을 타고 아시아 배터리 제조업체들의 유럽지역 투자도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니산, NEC, 토킨 3사의 조인트벤처인 AESC(Automotive Energy Supply Corporation)는 도요타, 르노와 협력해 영국과 프랑스에 배터리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가 폴란드와 헝가리에 공장을 세워 생산 중이며, 중국 CATL은 독일에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이 전기차 배터리 공장 설비 급가속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자동차 배터리 자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일렉트라이브)

EU 역내 생산 배터리로 유럽 전기차 수요충족 가능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럽집행위원회(EC)는 오는 2025년까지 배터리 공장들이 EC의 요구를 충족시키기를 원한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EC 부위원장는 지난 3월 “중요한 분야에서 전략적인 독립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피치 솔루션즈(Fitch Solutions) 분석가인 올리버 몬티크에 따르면 이는 무리한 주문이다.

몬티크는 ‘유럽대륙에서 배터리 소재를 추출, 정제, 가공해 생산까지 하는 완전한 폐쇄 루프 공급망’이 구축되는 시점을 2040년으로 보고 있다.

특히 유럽은 아시아나 미국보다 배터리 제조과정에서 환경을 덜 오염시키는 공장을 짓기를 원하고 있으며, EU 관계자들은 원료를 얻는 방법과 사용된 배터리를 재활용 방법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표준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배터리 동맹, 그리고 배터리 자급과 공장 원자재 공급문제

EU 국가들은 지난 2017년 출범한 유럽배터리동맹(European Battery Alliance)을 통해 오는 2050년 탄소중립화 목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이나 아시아에서 수입되는 배터리 기술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배터리판 에어버스(Airbus for Batteries)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배터리 동맹에는 차세대 동력원 개발 경쟁을 벌이면서 배터리를 생산 능력을 구축하고 있는 자동차 업체와 에너지그룹 등 수십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EC는 아시아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리튬이온 기술에 덜 의존하는 신세대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지난 1월 29억 유로(약 3조 9000억원)를 지원하는 연구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세프코비치 EC부위원장은 유럽 투자은행과 협력하여 야심찬 2025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500억 유로(약 67조 4000억원)를 추가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C가 이 목표를 달성 과정에서 유럽공장들이 8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추정하지만, 이는 그들이 과연 얼마나 빨리 제조기술을 익히느냐에 달린 문제로 보인다.

▲유럽국가들은 오는 2050년 탄소중립화를 위해 전기차 도입에 적극적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지난 3월 르 메르 EC 집행위원은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유럽이 경쟁 배터리 제조업체를 따라잡기에 충분하게 해 줄 숙련공 배출을 위한 대규모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지금부터 2025년까지 전기자동차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80만 명의 근로자를 양성하고 재전환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배터리 원자재 공급이 필수적으로 전제된다. EC는 2030년까지 리튬 수요가 18배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코발트 수요는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르메르 EC집행 위원은 “이미 우리는 12개 회원국 70개 프로젝트에 총 200억 유로(24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리튬, 니켈, 흑연과 같은 주요 원자재의 독자적 공급을 포함한 배터리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유럽은 투자, 투자, 투자를 해야 한다. 이것이 중국, 미국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몬티크 피치솔루션즈 분석가는 EU 지도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로부터의 공급도 보장받을 것을 조언하고 있다. 그는 “호주, 캐나다, 브라질 및 칠레를 생각하고 있다”며 “정상적인 상업적 제약이나 정치적 이유로 인한 공급 측면의 위협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과 체코는 상당한 리튬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EC는 또한 내년까지 EU의 노력을 저해하는 값싸고 지속 가능성 낮은 배터리 수입품의 수입을 막기 위해 재료 재활용을 포함한 엄격한 새 배터리 환경 기준을 채택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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