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가 지난 100여년 동안 알아내려고 노력했지만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동식 아날로그 컴퓨터의 수수께끼가 마침내 풀렸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은 X레이로 읽어낸 데이터와 고대 그리스 수학을 이용해 2000년이나 된 안티키테라 메커니즘(Antikythera Mechanism)의 사라진 전면 톱니바퀴의 구조를 알아내 디지털 복제본을 만들었고 기계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고대의 기계 전면에 있는 천체의 위치를 계산해 보여주는 표시판을 새롭게(이전보다 정확하게) 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안티키테라 기계)으로 불리는 이 고대 기계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던 것일까.
지난 12일자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논문으로 소개된 내용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2000년 동안 바다에서 잠자던 고대그리스 기술의 정수
지금으로부터 무려 100여년 전인 지난 1901년 그리스 안티키테라 섬 인근 바닷속. 해면(스폰지)을 찾던 한 잠수부가 기원전 1세기 경 난파된 로마 화물선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부식된 덩어리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이 기계는 34cm x 18cm x 9cm 크기의 네모난 나무 상자에 결합돼 부식된 채 들어가 있었다.
이 유물은 다른 잔해와 함께 국립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듬해 고고학자 발레리오 스타이스가 청동과 나무의 부식된 덩어리의 정체가 기계장치라는 것을 알아내 발표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1905년 독일의 문헌학자 알베르트 렘이 이것의 구조를 추정한 톱니바퀴로 구성된 장치를 묘사한 그림을 그려 냈다. 그러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1971년 데렉 J. 드 솔라 프라이스 예일대 교수와 그리스 핵물리학자 샤라람포스가 82조각으로 된 이 고대 기계 장치의 X레이와 감마선 이미지를 촬영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이 고대의 천문 관찰용 기계장치라는 것이 이 때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은 과학계와 세계를 경이로움으로 사로잡았지만 고대 문명이 어떻게 그런 놀라운 장치를 만들었는지는 10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채 경이로운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기술에 대한 지식은 고대의 어느 시점에 사라져버렸고 중세 비잔틴과 이슬람 세계에서도 비슷한 기술 작품이 등장하긴 했지만, 14세기 유럽에서 기계식 천문시계가 발달하기 전까지는 이와 비슷한 복잡한 기계가 다시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1500년대 초 독일의 페터 헨라인이라는 시계 제작자가 이같은 정밀한 톱니바퀴가 들어간 회중시계를 처음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이처럼 미세한 톱니바퀴를 사용할 정도로 발전해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 중간에 왜 사라졌을까?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의 구성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가장 큰 기어는 지름이 약 13cm이며 원래 223개의 부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발견된 82개 조각들 가운데 네 개에는 기어가 들어 있었다.
이 중 가장 큰 A조각(Fragment A)은 베어링, 기둥, 블록으로 구성돼 있다. D조각(Fragment D)으로 알려진 또다른 파편은 설명되지 않는 디스크(원판), 그리고 63개의 톱니바퀴와 조각 판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05년 런던 과학박물관의 기계공학과 큐레이터였던 마이클 라이트가 시도한 X선 촬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거의 2000년 동안 사장돼 있던 기계 뒷면에 숨겨져 있던 수천개의 그리스어 문자 텍스트가 발견됐다.
기계 뒷면 커버에 새겨진 글씨는 기계 사용 설명서였다. 이 명문(銘文)은 이 기계 구조를 설명하고 있었다. 기계 앞쪽 원형 평판 중심에 돔모양의 지구가 있고 이 돔에서 펼쳐져 나간 지시계(바늘)끝 구슬이 원형 주변을 도는 행성들을 가리키게 돼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왜 만들었나?
세계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로 알려진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은 고대 세계에서 살아남은 가장 복잡한 공학 작품이다.
BC 1세기에 만들어져 2000년 이상 된 이 장치는 달과 일식뿐만 아니라 태양, 달, 그리고 행성의 위치를 예측하는 데 사용됐다.
행성들은 타원형으로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지구에서 관측할 때 때때로 역주행을 하다가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변 주기에서 행성의 위치를 예측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추적해야 했다.
이 천문 계산기는 30개의 청동 기어가 복합적으로 조합된 기계로서 일식, 달의 위상, 행성의 위치, 심지어 올림픽 날짜 등을 예측하는 데 사용됐다. (올림픽 날짜는 기원전 776년 4년 주기로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에 휴전 수단으로 시작돼 기원후 393년까지 이어졌다. 1894년 쿠베르탱 남작이 올림픽을 부활시키게 된다.)
안티키테라 기계의 정확한 구조를 찾아라
지난 세기와 금세기에 걸쳐 이 기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고 가장 큰 성과로는 지난 2005년 3D X레이와 뒷판 표면 이미지 내용을 이해한 연구가 꼽힌다.
당시 연구는 이 기계가 어떻게 일식들을 예측하고 달의 가변 운동을 계산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여전히 기계 앞면에 있는 천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기어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안티키테라 섬 해저에서 건져낸 이 기계가 약 3분의 1에 불과한 82조각만으로 원상태를 복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UCL 연구팀은 16년전인 2005년 런던 과학박물관 큐레이터 마이클 라이트가 마지막으로 작업한 부분에서부터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라이트는 우주의 동축 지시 판(coaxial pointer display)으로 행성의 움직임과 주기를 계산하는 최초의 작동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이 기계의 타당성을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그도 이 기계를 완전하게 작동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UCL 연구팀은 라이트가 지난 2005년 연구에서 발견한 글씨 내용 중 행성들이 고리 위에서 움직이며 표식 구슬로 표시되도록 배치됐다고 묘사한 내용에 주목했다.
마침내 안티키테라 기계의 비밀을 풀다
UCL 연구팀은 이전까지 밝혀내지 못한 안티키테라 기계의 앞판 디스플레이에 주목했다. 이 부분은 이전까지 그저 추측에 의한 설계도로만 남아있는 영역이었다.
이들은 이 기계의 앞면 덮개를 X선으로 촬영했다. 그 결과 새로이 ‘462년’과 ‘442년’이라는 중요한 숫자를 찾았다. 이는 금성과 토성의 회합주기와 연도 간 상관 관계를 정확히 나타낸 것이었다.
UCL 연구팀은 이 분석 결과와 고대 그리스 수학의 분석을 결합했다. 마침내 이 앞면 청동 표시판에 새겨진 물리적 증거 및 각인과 일치하는 원래의 설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해석해 낼 수 있었다.
이들이 사용한 수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기술한 수학이었다. 이를 통해 금성의 주기 462년은 289 금성 회합주기에 해당하고, 토성의 주기 442년은 427 금성 회합주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이 정확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회합 주기는 어느 특정 행성이나 천체의 상대적 위치가 처음 관측된 자리로 되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UCL 연구팀은 이를 통해 이 안티키테라 메커니즘 발견 당시 분실된 나머지 부분에 기술된 다른 행성들, 즉 수성, 화성, 목성의 회합주기도 계산해 내는 데도 성공했다.
고대 그리스 때 알려진 행성은 5개(수성,금성, 화성, 목성, 토성)뿐이었고 그리스인들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위치시켰는데 UCL은 이를 감안해 안티키테라 기계 모델을 만들었다. 당시 지식을 그대로 반영해 지구를 앞면 중심에 작은 돔형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마침내 이 기계의 구조를 밝혀낸 수석 논문저자인 토니 프리스 UCL 기계공학 교수는 “우리의 모델은 모든 물리적 증거와 일치하며 기계 자체에 새겨진 과학적 명문의 설명과 일치하는 최초의 모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