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대기업 '네이버'...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인재 블랙홀

[AI 요약]

기존 대기업 직원들은 상상도 못할 수평적 조직 문화 이야기가 기사화되고, "또한 네이버야"라는 감탄사가 나왔고, 일하고 싶은 기업 1위에도 여러 차례 회자가 됐던 네이버다.  이 회사의 조직 문화는 분명히 수평적이지 않은 조직 문화가 존재함. 블라인드에는 네이버 직원이 자사를 평가하면서 "대외적 이미지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조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젊은 당파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구멍가게"라는 글을 올려주었다. 스타트업 신화로 출발해 국내 it업계를 대표하는 혁신기업이 들을 만한 평가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성장을 함께 지켜본 it기자 입장에서 불쾌한 헛웃음을 남긴다. 

지난해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 중 직원을 가장 많이 늘린 회사 2위를 네이버가 차지했다. 최근 대기업집단 전문 데이터서비스 인포빅스가 국내 38개 대기업집단 소속 상장사의 1분기 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넷마블에 이어 네이버가 직원수를 가장 많이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의 직원수는 3월말 기준 4168명으로, 지난해 3월(3612명) 보다 556명 늘며 15.39% 증가했다. 올해 초 IT 및 게임업계의 개발자 영입 경쟁 탓에 연봉 인상폭도 컸다. 같은 기간 네이버의 평균 급여는 1억 247만원으로 21.2%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IT기업을 대표하는 네이버는 지난 2017년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 이후 올해 5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됐다. 

카카오와 함께 전통적인 IT제조업에 기반하지 않은 혁신 기업을 대표하는 네이버는 이제 엄연한(?) 대기업이 됐다. 아니 이미 꼰대들이 득실 대는 전통적 개념의 대기업이 된 지 오래다. 

지난 1999년 6월 2일 설립된 네이버(당시 네이버컴)는 국내 스타트업의 시조격이다. 창업자인 삼성SDS 출신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를 중심으로 열정 가득한 젊은이들이 모였고, 검색 시장을 주름잡던 야후, 라이코스를 무서운 속도로 추월했다. 당시 국내 포털의 큰형님 '다음'도 네이버의 무서운 기세에 맥을 못췄다. 

네이버의 등장으로 국내 포털 시장은 토종 기업들이 장악했고, 글로벌 검색 포털인 야후도 200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서 국내 시장에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시절 현 네이버의 CEO인 한성숙 대표가 활약했던 후발주자 엠파스의 광고 문구가 "네이버 다음 엠파스"라고 할 정도였다.(실제 3위는 야후였지만, 엠파스는 중의적 표현으로 '1위 네이버 다음 순번이 엠파스로 2위다'라는 문구를 써, 다음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스타트업 정신-수평적 조직문화가 만든 네이버는 건재한가?

국내 시장에서 네이버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현재 전세계 검색 시장에서 구글이 시장 장악력에서 고전하고 있는 유일한 시장이 한국인데, 그 원인은 네이버의 독점적인 시장 영향력이다. 네이버는 검색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부동산, 뉴스 등 전방위적인 생활밀착형 서비스에서 공룡기업으로 거듭났다.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첨단 미래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물론, 혁신 스타트업의 인수합병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있다. 웹툰 등 콘텐츠 비즈니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이런 네이버의 저력은 스타트업 정신에서 온다고 오랜 시간 믿어왔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끝없는 도전 정신으로 게으름을 멀리 했고, 이제는 대기업 총수로 지정된 이해진 GIO는 2019년 6월 오랜 침묵을 깨고 공식석상에서 "수익이 나더라도 과거의 모델로만 수익을 지키고 있으면 생명력이 떨어지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9년 6월 '디지털 G2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심포지엄에 대담자로 참석한 이해진 네이버 GIO.
지난 2019년 6월 '디지털 G2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심포지엄에 대담자로 참석한 이해진 네이버 GIO.

 

당시 많은 이들이 이 GIO의 말에 공감했다. 네이버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대기업이 되니 스타트업 정신을 잊고 게을러 졌다'라고 비난하던 시기였다. 네이버 내부에서도 강력한 경쟁자 카카오의 등장 및 구글이 보여주는 첨단IT 기업으로의 도약을 보면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안락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창업자의 일갈은 네이버를 다시 뛰게 했다.

너무 열심히 뛰어서였을까. 네이버의 '조직'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네이버를 존재하게 만든 것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도입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조직 문화가 일조했다. 기존 대기업 직원들은 상상도 못할 수평적 조직 문화 이야기가 기사화되고, "역시 네이버야"라는 감탄사가 나왔으며, 일하고 싶은 기업 1위에도 여러 차례 회자가 됐던 네이버다. 

"수평적이지고, 자유분방하지도 않은 조직이 됐다"

그러나 대기업화 된 네이버는 밖에서 보는 것 만큼 수평적이지도, 자유분방하지도 않았다. 2010년대 중반에 기자가 네이버의 한 대외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취재원의 실루엣이 드러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당시 대리급과 부장급 네이버 구성원들과 꽤 오랜 기간 일하면서 금이 가고 있는 조직 문화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네이버는 출퇴근을 전적으로 직원 자율에 맡기는 '책임근무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부러움을 표현하자 "리더의 눈치를 보느라 자율적으로 출퇴근 하는 것은 일부 부서의 일부 직원들만 가능하다"라는 하소연이 돌아왔다.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난 네이버의 한 리더 역시 우스갯 소리로 "네이버의 자율 출퇴근제는 다른 IT기업과 결이 다르다. 네이버는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고 팀내 규율이 쎈 편이라 직원들이 힘들게 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네이버에 근무하다 퇴사해 현재 유명 인터넷기업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A 이사 역시 "네이버에서 일할 때 상급 임원의 호된 질책과 업무지시로 제 때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라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그 임원에게 짧은 시간 많은 일을 배워서 감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A 이사의 멘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A 이사 뿐 아니라, 같은 부서의 과장급 B씨 역시 네이버의 고된 업무 강도와 상급자의 몰아치기식 업무 추진 방식 탓에 회사를 그만 둔 경우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만 해도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등의 쇠뇌식 교육에 익숙한 세대다. 이를 겪어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문화가 네이버 내에 존재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일부 사례로 이 회사의 조직 문화를 싸잡아서 비난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 수평적이지 않은 조직 문화가 존재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이들이 한결 같은 목소리로 한 이야기도 있다. 일에 대한 보상(급여)가 충분한 편이니 참고 지낸다는 것이었다. 돈이면 다 해결되는 것일까.

상사 갑질, 40대 직원의 극단적 선택...네이버는 인재 블랙홀인가?

그리고 최근에 큰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25일 40대의 네이버 개발직군 직원 C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업무상 스트레스와 임원(상사) D의 모욕적 언행 등 상사의 '갑질'이 그 원인으로 지목됐다. 현재 네이버는 네이버 리스크관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해당 임원과 최인혁 COO 등 관련 임원 4명에 대해 직무정지를 한 상황이다. 

폐쇄형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네이버 직원이 자사를 평가하면서 "대외적 이미지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조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젊은 꼰대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구멍가게"라는 글을 올렸다. 스타트업 신화로 출발해 국내 IT업계를 대표하는 혁신기업이 들을 만한 평가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성장을 함께 지켜본 IT기자 입장에서 씁쓸한 헛웃음을 남긴다. 현 시점에서 더 없이 적확한 네이버 조직문화에 대한 평가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장점이었던 수평적인 조직 문화는 대기업이 되면서 지나친 성과 달성 위주로 변질됐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어느덧 임원이 돼버린 과거 회사 성장의 주역의 젊은이들은 꼰대가 된다. 

꼰대가 돼버린 젊은 혁신가들의 '이너서클'

여기에는 특히 학맥 등으로 맺어진 그들만의 '이너서클'과 봐주기 문화도 한 몫했다. C씨의 극단적 선택 이면에도 바로 이러한 이슈가 자리잡고 있었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이 7일 분당 사옥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조목조목 드러났다. 갑질 대상자로 지목된 D 임원의 경우, 최인혁 COO와 서울대 동문으로 과거 한 차례 같은 문제로 네이버에서 방출된 적이 있지만 결국 최 COO가 다시 입사시켰다. D는 네이버 퇴사 후 게임회사인 넷마블로 이직했지만 역시 같은 문제로 인해 퇴사했고, 다시 서울대 선배가 있는 네이버로 복귀한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D의 재입사 초기에 고인이 된 C씨를 포함한 14명의 직원이 최 COO와 면담을 했지만, 최 COO가 "D에게 문제가 있으면 D에게 말을 하고,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본인(나)에게 말을 해라.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한 적이 있다. 

또한 올해 3월 4일 이해진 GIO와 한성숙 대표가 포함된 회의에서 모 직원이 D를 가리켜 책임 리더 선임의 정당성에 대해서 질문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인사 담당 임원은 "책임 리더의 소양에 대해 경영 리더와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으며 더욱 각별하게 선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고 한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가운데)이 “조직의 문제를 묵살한 네이버의 무책임한 방조와 묵인 역시 고인의 비극적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사진=블로터)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가운데)이 “조직의 문제를 묵살한 네이버의 무책임한 방조와 묵인 역시 고인의 비극적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사진=블로터)

 

결국, 꼰대가 돼버린 과거의 혁신가들은 후배들의 절규를 무시했다. 더이상 수평적이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은 꼰대 기업이 돼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의 동료였을 수도 있는 40대 가장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업계에서는 네이버를 일컬어 '인재 블랙홀'이라고 자주 말한다. 우수한 IT 개발인력을 자금력과 인지도를 내세워 싹쓸이하기 때문에 붙은 수식어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인재 블랙홀이라는 불명예가 주어졌다. C씨는 지난 2년여 동안 주말과 야간에도 업무를 했고, 식사 시간에도 업무 연락 때문에 쉬지도 못했다고 한다. 개발자 조직의 수직적인 문화와 학맥 등으로 이어져 있는 네트워크 때문에, 임원에게 찍혀서 퇴사를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고 전해진다. 말 그대로 블랙홀 속에 빠진 느낌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미나 네이버 노조 사무장은 "D의 부당함과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료들이 시도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고인의 죽음은 회사가 지시하고 방조한 사고이며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했다.   

김효정 기자

hjkim@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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