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플랫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창작자들의 스토리텔링, 드라마 연출력 및 제작 능력, 그리고 세계에서 통하는 문화적 정서가 한데 어우러진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본사에서도 난리가 났죠. 2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개최된 '코드 컨퍼런스 2021'에 참석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겸 최고콘텐츠책임자(CCO)는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징어 게임이 '오늘의 톱텐'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현재 추세로 보면 넷플릭스 비영어권 작품 중 오징어 게임이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극찬했습니다.

한국 콘텐츠가 이 자리에 언급된 것은 칭찬을 넘어서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코드 컨퍼런스 2021은 글로벌 테크 기업 리더들이 모여 트렌드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나누는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의 CEO는 물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AI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AMD의 리사 수,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등이 참석했습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이 다루는 영상 콘텐츠는 이제 게임, 애플리케이션 등 소프트웨어(SW)와 같은 파급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옛날 바보 상자(TV)를 통해 지엽적으로 전파되던 그저그런 드라마들과 비교해서 시대적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이죠. 플랫폼을 타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 막대한 수익과 부가적 효과를 창출해 내는 킬러 콘텐츠가 된 것입니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웹툰과 웹소설로 글로벌 시장을 진출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잘 만들어진 영상 콘텐츠는 플랫폼과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플랫폼은 IT 기술과 함께 경제·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을 키웁니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히트작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엄청난 부가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적인 놀이문화와 정서가 세계인에 각인되는 잠재적 가치는 장기적인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글로벌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달고나 키트와 같은 상품 판매가 수백배 증가했고, 초록색 운동복이 유행하는 등 움직임만 봐도 이러한 파급력을 가늠해 볼 수 있겠죠? 

앞서 넷플릭스의 창립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징어 게임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스스로 457번 게임 참가자임을 인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물론 이를 통한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매개체로 확대 해석해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라는 강력한 플랫폼이 있었기에 흥행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초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힌 바 있고, 올해에만 55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대단한 흥행작이 나온 것입니다. 콘텐츠와 플랫폼이 서로 도움이 된 좋은 사례죠.

최근 국내 빅테크 플랫폼 규제 논란을 보면, 이러한 긍정 효과 보다 독점 이슈만 부각되는 점이 아쉽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혁신은 독점이 됐고, 초창기 긍정적 효과는 골목상권 죽이기와 소비자 주머니 털어가기로 변질되는 모습도 연출됩니다.

넷플릭스 역시 독점적인 OTT 플랫폼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죠. 다만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치열한 경쟁이 가능하고, 글로벌 콘텐츠가 쌍방향으로 유통된다는 점은 카카오-네이버의 독과점 사례와 직접 비교 대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은 킬러 콘텐츠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 잡고, 그 결과 소비자들이 플랫폼(넷플릭스)을 선택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카카오의 택시 호출이 가져다 준 편리와 혁신을 소비자가 선택한 것처럼 말입니다. 상대적 약자로 내몰린 기존 택시 업계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반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플랫폼 기업은 세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국가간 경쟁은 빅테크 혁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이 곧 세계 패권을 쥐는 열쇠이기도 하죠. 그 최전방에는 빅테크 기업들이 포진하고 있고, 국가 산업의 발전 또한 플랫폼 기반의 4차산업혁명의 성패에 달려 있습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오징어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흥행은 이러한 흐름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정부가 언제까지 플랫폼과 빅테크를 공공의 적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요. 변화는 바로 코 앞에 와있습니다.

김효정 기자

hjkim@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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