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이 법적으로 규정돼야 하는 이유는?

[AI 요약] 디지털 유산이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디지털 기기 및 공간에 남긴 흔적을 의미한다. 구글은 2013년부터, 메타는 2015년부터 유사한 정책을 도입해 사용자 유고(有故) 시 가족, 지인 등의 계정 접근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상황이다. 최근 애플 역시 아이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디지털 유산 정책을 도입했다. 향후 디지털 유산 문제는 단지 소셜미디어, 메일, 휴대폰 계정에 국한 된 것이 아닌 가상자산, 디지털 재화 등 ‘실질적으로 현금화가 가능한 유산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최근 애플이 아이폰 사용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가족이나 지인이 계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도입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법적, 제도적 정비 필요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유산이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디지털 기기 및 공간에 남긴 흔적을 의미한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SNS, 블로그 등에 올린 게시물, 사진, 댓글, 동영상, 게임 아이템, 가상자산 등이 디지털 유산에 해당한다.

글로벌 기업 기준에서 애플의 ‘디지털 유산’ 정책 도입은 사실 다른 업체에 비해 늦은 감이 있다. 구글은 2013년부터, 메타는 2015년부터 유사한 정책을 도입해 사용자 유고(有故) 시 가족, 지인 등의 계정 접근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네이버와 카카오, 삼성전자 등은 아직 법적, 제도적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라고 하지만, 제도적인 정비가 안된 상황에서 향후 디지털 유산 문제는 단지 소셜미디어, 메일, 휴대폰 계정에 국한 된 것이 아닌 가상자산, 디지털 재화 등 ‘실질적으로 현금화가 가능한 유산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사망한 사용자의 디지털 유산 접근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경우, ‘잊힐 권리’와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유산’ 각 기업 별, 나라 별 대응은?

먼저 애플의 경우 최근 운영체제인 iOS15.2 버전 업데이트와 함께 본격적으로 디지털 유산 정책을 도입했다. 사용자 사망 시 가족이나 지인이 계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방식은 ‘사전 지정’이다. 향후 아이폰 사용자들은 자신의 아이폰과 클라우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5명까지 미리 지정해 둘 수 있다. 이후 사용자가 사망 시 사전에 지정된 사람들은 아이폰에 저장된 사망자의 사진, 영상, 전화번화 등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은 꽤나 엄격한 수준으로 유지돼 왔다. 미국 정부를 포함해 각 나라의 정부나 기관에서 수사 목적으로 범죄 용의자의 아이폰 잠금 해제를 요청해 왔지만 애플은 번번히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절해 왔다.

그런 애플이 오랜 기간 고수한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 중 세계 최초로 디지털 유산에 관한 정책을 도입한 것은 구글이다. 2013년 4월 도입된 구글의 ‘휴면계정관리(Inactive Account Manager)’ 서비스는 구글 사용자가 자신의 계정이 휴면계정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3개월부터 18개월까지 설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휴면계정 관리자를 사전에 지정해 두면 계정 주인 사망 시 관리자에게 해당 계정의 접근 권한이 생기게 되고 관리자는 이를 삭제하거나 보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구글은 사전에 계정 주인이 휴면 계정 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글은 또한 관리자 지정을 하지 않은 채 고인이 된 사용자의 계정에 대해서도 그 가족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고인의 이름, 이메일 주소, 법적 대리인의 이름과 성, 이메일 주소, 사망일, 접근할 서비스 등을 제출하고 신분을 증명하면 계정을 삭제하거나 계정에 남겨진 데이터, 즉 디지털 유산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요청이 없는 휴면계정의 경우 2년 동안 유지 후 삭제하고 있다.

메타(전 페이스북) 역시 사후 연락자(Legacy Contact) 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역시 대리인을 사전에 지정해 두도록 하는 서비스다. 계정 주인의 사망 시 대리인은 메시지를 제외한 포스트, 사진, 영상 등의 상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대리인 역시 페이스북 회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상속받은 대리인은 해당 계정을 삭제하거나 추모계정(memorialization)으로 전환해 자신의 계정으로 접근, 게시물을 올리거나 프로필 사진을 교체하는 등 관리를 할 수 있다.

메타 역시 자사가 운영하는 페이스북에 계정 관리자를 지정하게 하는 정책으로 디지털 유산을 인정하고 있다.

디지털 유산 상속을 법으로 보장하는 나라도 있는데, 독일이 대표적이며 미국의 경우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인디애나, 오클라호마 등 6개 주가 법적으로 디지털 유산 상속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직 법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주들도 디지털 유산 관리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속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유산 정책은?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네이버의 경우 ‘디지털 유산 관련 정책’을 시행 중에 있다. 다만 유족 등 정당한 귄리를 가진 관계자로만 국한되며 지원되는 서비스 역시 한정적이다. 계정의 경우는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제공되지 않고 유족 요청 시 회원 탈퇴 처리를 해 주는 수준이며, 블로그 등 공개된 자료에 대해서는 유족 확인 절차를 거친 후 백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도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카카오톡, 스토리, 메일 등의 서비스와 연동되는 계정의 회원탈퇴만을 지원하는 수준이다. 카카오의 경우 서비스에 남아 있는 데이터 백업 조차 지원하지 않고 있다. 즉 고인의 계정 정보를 모를 경우 유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회원탈퇴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애플의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갤럭시 시리즈를 제조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는 유족이 사망자의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서류를 제출하고 가족임을 증명하면 자사 휴대폰의 비밀번호 패턴을 풀어주고 사진 등 데이터 백업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기기가 없는 상황에서 계정 내 데이터 접근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각 기업들이 디지털 유산 관련 소극적인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로는 우리나라에 아직 디지털 유산 상속과 관련해 명확하게 규정된 법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디지털 유산은 민법에서 규정하는 일신전속권(특정 권리 주체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양도, 상속에 제한을 받는다)을 적용해야 하며 때문에 ‘상속이 제한된다’는 주장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반드시 일신전속권에 해당하지 않으며 행사상의 일신전속권 중 상속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디지털 유산 역시 산속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는 상황이다.

애플이 아이폰에 디지털 유산 정책을 적용하긴 했지만, 유족들은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서비스 계정 접근이 여전히 쉽지 않다. (사진=픽사베이)

또한 상속을 할 수 있도록 법이 정비된다고 해도 어디까지 디지털 유산으로 인정할 것이냐하는 문제는 다시 논란이 된다. 계정정보 및 계정이용권, 메일 정보, 기타 영상·사진 등의 콘텐츠 등으로 구분했을 때 현행법에서는 계정정보 및 계정이용권에 일신전속적 성격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디지털 유산 상속과 대치되는 프라이버시권, 즉 잊힐 권리에 대한 논란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상속권을 넓게 허용할 경우 고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족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가 공개돼 사생활 침해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란은 사실 꽤 오래전에 제기됐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의 유족들이 고인의 미니홈피와 이메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유족들의 요청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

현재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망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에서 당사자 사후 누구도 온라인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우리나라에 ‘디지털 장의사’가 적지 않게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유족들이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많고 복잡한 디지털 환경의 개인정보들을 대행해 파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망한 사람의 개인정보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정보 역시 가능하다.

온라인 검색을 통해 확인되는 디지털 장의사

문제는 현행법 상 제 3자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 계정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장의사가 성행하는 이유는 불법촬영영상 유출 피해자 등의 수요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규정할 지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고 있지만, 입법화는 여전히 다른 이슈에 밀려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가상자산 등 디지털 자산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가상자산을 보유한 사람이 사망할 경우 해당 가상자산은 무용지물이 된다.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실제 사례도 적지 않다. 사망한 가족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을 찾으려 해도 가상화폐 전용 계좌인 월렛의 암호가 필요한데, 64자리에 이르는 암호는 단 한번만 발급된다는 것이 문제다.  또 발급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계정정보와 같이 인증 등의 절차를 통한 재발급도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그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00만비트코인이 수년간 거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디지털 유산의 문제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역시 직면하고 그 심각성을 인식하는 상황이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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