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간은 왜 모두 여성일까

올해 1월 우리는 '가상인간'이라는 키워드를 접했다. 물론 그 전에도 가상인간이라는 용어와 사례가 있었지만, 올해 1월은 LG전자가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20대 여성 '김래아'라는 가상인간을 선보이면서 가상인간 전성시대 활 시위를 당겼다. 이후 TV CF 등에 다양한 여성 가상인간이 등장했고, 여성 연예인을 밀어내고 있다. 현시점에서 잘 나가는 가상인간은 왜 전부 여성일까.

지금 우리가 접하는, 가상인간의 탄생

김래아의 컨셉트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스쳐 지나면서 보이는 20대 여성처럼 생긴 가상인간이다. 흥을 돋구는 사이버 연예인도 아니다. 유튜버나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 역할을 하게 될 현실적인 버추어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다.

실제 LG전자가 설정한 래아의 직업은 LG전자의 협찬을 받는 잘 나가는 버추어 인플루언서다. 그녀가 인플루언서 외 별도의 실제 직업이 있는 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인플루언서가 돈도 잘 버니까 꽤 적합한 설정이다. 래아는 LG전자가 AI 기술을 기반으로 눈에 보이는 캐릭터를 만들고, 여기에 목소리와 움직임을 구현했다.

LG전자의 가상인간 '김래아' (사진=LG전자)

래아의 캐릭터는 꽤 구체적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23세 여성이다. 직업은 음악을 만드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기획됐다. (이제 가상인간이라는 설정을 빼고 이야기 해 보자. 래아가 언제든 그녀의 SNS 채널만 보면 만나 볼 수 있는 우리의 친구라고 가정하고서 말이다)

래아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갖고 있다. 여느 젊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음식점에서 맛난 음식을 먹거나, 한강 등지에서 멋진 배경을 두고 찍은 사진을 올린다. 평범한 20대 여성의 일상을 우리는 언제든 그녀의 SNS에 접속만 하면 만나 볼 수 있다. 실제 우리가 팔로잉하는 모르는 사람 보다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가상인간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가 몰리고 있다

그리고 올 한해가 거의 다 지났다. 그 사이 가상인간은 아주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떠올랐다. 가상인간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함을 알아챈 기업들도 재빠르게 나서고 있다. 특히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메타버스' 열풍을 타고 가상인간의 몸 값이 치솟고 있다.

가상인간 '로지' (사진=신한라이프)

현재 가장 핫한 가상인간은 로커스가 개발한 '로지'다. 로지는 신한라이프의 TV 광고 CF 모델로 하루아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로지가 가상인간인지 몰랐던 사람들은 공주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독특한 개성이 있는 그녀에게 서서히 빠져들었다. 특히 여성들이 더욱 환호했다. 예쁜척 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대로 환하게 웃고 열정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여성들의 기호에 시기적으로 딱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로지는 스타덤에 올랐고, 로지를 스카웃하기 위해 네이버가 움직였다. 네이버웹툰이 지난 22일 로지의 개발사 로커스를 235억원에 인수했다. 로지를 활용해 광범위하고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고,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로커스가 영화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만큼, 네이버웹툰의 IP(지적재산권)를 영화화나 애니메이션화 하는 등 기대효과가 있다.

SK스퀘어도 지난달 가상인간 '수아' 개발사인 온마인드의 지분 40%를 80억원에 인수했다. SK텔레콤에서 분할된 투자전문회사인 SK스퀘어는 온마인드의 가상인간 기술을 활용해 버추어 인플루언서 사업영역을 키워갈 방침이다. 이외에도 가상인간 '한유아'를 개발한 자이언트스텝에는 네이버와 하이브가 투자했으며, 가상인간 아이돌 걸그룹 '어터니티' 개발사 펄스나인은 넵튠에서 투자했다.

가상인간 '수아' (사진=SK스퀘어)

기업들이 가상인간 개발사에 투자하는 이유는 메타버스다.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가상의 세계에도 스타가 필요하고, 현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스타를 일반인이 직접 만나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미래의 스타는 반드시 사람일 필요가 없다. 여기에 메타버스 붐까지 더해져서 가상인간의 주가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앞서 나열한 투자 기업들의 경우 단순히 가상인간의 IP나 소유권을 얻기 위해 투자한 것은 아니다. 메타버스에서 구현할 가상인간의 제작 기술 등 '원천 기술'을 흡수하기 위함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왜 여자인가?

그런데 지금의 가상인간은 왜 다 여성 캐릭터일까. 김래아, 로지, 한유아, 수아, 루시 등 요즘 뜬다는 가상인간의 성별은 여성이고, 나이 또한 10~20대로 설정돼 있다. 이들은 주로 SNS에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버추어 인플루언서로 활동한다. 이들이 먹고 마시고 꾸미는 모든 것이 팔로워들의 관심을 끈다. 듣는 음악과 이에 맞춰서 추는 춤은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자극한다. 산업계는 이들을 통해 여성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주목한다.

화장품이나 패션, 음식 등의 주요 소비층은 여성이다. 특히 MZ세대 여성들은 자신을 위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가상인간은 완벽한 미인 캐릭터가 아니고, 주변에서 볼 법한 친근한 이미지에 더해 약간의 개성을 얹어서 스타성을 입혔다. 즉 일반 여성 소비자가 충분히 '닮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극을 준다.

여성의 소비를 이끌어 내고, MZ세대가 '힙'하게 즐길 수 있는 자극을 주는 캐릭터로 적당히 예쁘고, 젊고 개성있는 여성 가상인간이 주류가 된 것이다.

롯데홈쇼핑이 제작한 가상인간 '루시' (사진=롯데홈쇼핑)

지난 1998년 데뷔한 우리나라 1호 사이버 가수 '아담'이 실패한 이유는 당시 이러한 인사이트를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 팬들은 여성 아이돌 보다 남성 아이돌에 환호하고, 아낌 없이 지갑을 연다. 직접 비교하는 것이 적절치는 않지만 BTS와 블랙핑크를 놓고 보면 어림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돌과 같은 스타를 두고 봤을 때도 주요 소비 주체는 여성이다. 최근에는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서 여성 아이돌에 대한 여성 팬의 투자(?)도 많이 올라갔지만, 스타의 개념에서 벗어나 닯고 싶은 인플언서로의 가상인간 캐릭터는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사이버 가수 '아담' (사진=나무위키)

로지의 SNS 팔로워는 10만명이 넘고,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루시도 4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갖고 있다. 디지털 셀럽으로 팬덤을 형성한 것이다. 최근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실제 연예인들의 사생활 논란과 과거 품행 등에서도 자유로워 기업들과 소비자들 모두 가상인간에 호감을 갖고 있다. 특히 이들의 개발 과정에는 AI가 개입해서 표정, 말투, 소비자의 호감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학습까지 된다. 미래에는 AI 기반 가상인간이 사람을 위로해주고 친구가 돼 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박현영 소장은 "앞으로는 접속의 시대에서 접촉의 시대로 전환될 것이다. 이 접촉은 사람과 사람과의 접촉은 아니다. 굳이 접촉 대상을 말하자면 '로봇'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시대는 변했고, 우리가 접촉해야 할 대상은 지금의 가상인간의 진화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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