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E, 규제 완화 정책에서 빠졌다… ‘게임=질병’ 논란 재점화

[AI요약] 게임업계가 그간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P2E 규제 완화는 결국 신중론을 앞세운 정부 방침에 좌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임의 사행성 논란이 P2E 게임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게임 과몰입 등으로 인한 부작용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질병코드 도입 논란은 게임 자체를 규제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행성 문제로 논란이 된 P2E 게임은 규제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여기에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가 발효되며 게임 규제 논란이 재점화되는 상황이다. (이미지=픽사베이)

게임업계가 그간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P2E(일명; 돈 버는 게임) 규제 완화는 결국 신중론을 앞세운 정부 방침에 좌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박보균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나 P2E를 비롯한 ‘게임의 NFT(대체불가토큰)’ 허용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박 장관이 내 놓은 답은 사행성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허용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잘 챙겨 보겠다”는 말로 마무리 된 장관의 발언이었지만, 문제가 있으니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사실상의 거부 의사로 읽히는 대목이다.

게임 산업에 대한 문체부의 입장을 좀 더 살펴보면 모순적인 면도 적지 않다. P2E 게임에 대한 해외 진출은 지원하겠지만, 국내에서는 앞서 박 장관이 밝힌 것과 같이 사행성 문제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랜 기간 제기돼 온 게임이 질병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돈 벌어 오는 건 좋은데… P2E를 바라보는 정부 속내는?

플랫폼 산업을 비롯해 각종 신산업 분야에는 민간 주도까지 언급하며 자율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유독 P2E 게임에서는 속 시원한 해법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배경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지난해 국내 게임 수출 규모는 94억4000만달러(약 12조원)으로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의 69.5%를 차지했다. 한 마디로 수출 효자 종목인 셈이다. 글로벌 게임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P2E 게임 역시 허용만 된다면 국내 게임사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확보한 상태다.

실제 최근 암호화폐 시장이 급락하며 위기 상황에 직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게임사들의 P2E 게임 진출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위메이드, 컴투스를 비롯해 3N으로 불리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주요 게임사는 모두 P2E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게임업계와 소통 간담회에 참석한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P2E 게임에 대한 해외진출 연구개발 지원을 언급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사행성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 놨다. (사진=문체부)

하지만 게임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행성 논란을 비롯해, 질병 논란 등 하나 같이 잘못 건드리면 더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이 높은 사안들이다. 정부의 솔직한 심정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처럼, ‘수출 효자’로서 게임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은 지원하겠지만, 국내에 논란이 되는 부분은 오히려 내 뱉고 싶은 것이다.

이는 문체부 산하 기관의 전혀 다른 행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2022년 신성장 게임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P2E 게임 개발사 링게임즈가 선정됐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는 P2E 게임을 불법으로 규정, 국내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5억원 상당의 P2E 게임 제작 지원을 하고 한쪽은 금지하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게임에 대한 사행성 논란은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게임 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학계에서도 사행성 문제 해결은 지적하는 사안 중 하나다.

이를 테면 게임사들이 현재 추구하는 P2E 게임 방식은 이용자 권익이나 수익배분에 대한 고려 없이 게임사만 배불리는 구조라는 것이다. P2E 생태계 내에서 암호화폐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청소년 진입 규제 방안, 캐릭터나 확률형 아이템 판매 금지 등 사행성을 막는 장치가 선행되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는 거꾸로 사행성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갖춰진다면 P2E 게임도 가능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 정부가 굳이 달라진 상황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라는 어려운 길 대신 손쉬운 규제를 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가 P2E 게임을 규제하는 배경에는 지난 2004년 발생한 ‘바다이야기’ 사태가 있다. 이후 정부는 게임법 제 32조 ‘게임물을 통해 획득한 결과물을 환전할 수 없다’는 조항을 근거로 사행성 게임을 규제해 왔다. 하지만 게임 업계는 18년 전 규제를 P2E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P2E 게임 출시를 허용하되, 문제가 있으면 그에 대한 규제를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WHO 질병코드 발효, 재점화되는 게임 규제 논란

WHO가 지난 2019년 통과시킨 'WHO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이 올해 전격 발효됐다. 여기에는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 '6C51'이 부여돼 있다.

게임의 사행성 논란이 P2E 게임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게임 과몰입 등으로 인한 부작용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논란은 게임 자체를 규제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논란이 다시금 촉발된 것은 지난 2019년 WHO(세계보건기구)가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규정한 ‘WHO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이 올해부터 전격 발효됐기 때문이다. WHO는 게임 이용장애에 대해 질병코드 ‘6C51’을 부여했다. 이는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지속하는 행위로 정의돼 있다.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나라 또한 늦어도 2026년 9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DC) 개정 전까지 게임의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문제가 녹록지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게임 과몰입에 대해 질병코드를 부여할 시 도입 2년 간 전체 게임 산업의 평균 매출액이 44%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매출액 감소 뿐 아니라 그에 따른 파급 효과로 총생산은 12조3623억원이 감소하고, 일자리는 약 8만개가 사라진다는 전망을 내 놓고 있다.

물론 WHO의 질병코드는 권장 사항이며 우리나라의 KDC는 독자적인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WHO의 방침에 동조하는 게임 규제 측의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정신의학계와 교육계는 과도한 게임 이용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부작용을 부각시키며 KDC 질병코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상황에서 정부는 앞서 사행성 논란과는 또 다른 미묘한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다. 무작정 규제에 힘을 실어주기에는 게임 산업이 만들어 내는 일자리와 경제적인 파급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며 “지나친 사행성이 우려되는 부분 외에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P2E 게임, 질병코드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대통령이 언급한 그 선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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