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을 끈 지 1년이 넘었다.

유튜브의 비밀


IT업계에서 콘텐츠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유튜브든, 넷플릭스든, 틱톡이든, 사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보다 ‘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콘텐츠가 훨씬, 그것도 아주 훨씬 많다는 것. 콘텐츠를 보면서 웃기고 재밌고 눈물 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천'을 잘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피드(feed)라는 디자인 시스템 덕분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유튜브, 트위터는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계속해 내게 먹여(feeding)준다.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다른 점은 새끼기 필요로 해서 먹이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가 사용자의 필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피드를 마주하는 순간 공급자는, 새끼(사용자)의 말초 신경을 잡아끌고, 필요를 만들어낸다. 집요할 정도의 고도의 계산 하에 만들어진 필요다.

“재밌을걸?(알고리즘으로 102321번 정도 계산해봤어 ㅎ)”

그리하여 새끼(사용자)는 계속해서 ‘다음'을 외치게 된다. 피드를 한 뼘도 내리지 않고 끈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없다.

그렇게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완전히 끄고 산 지 1년이 넘었다. 유튜브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재밌는 영상을 볼 땐 즐겁고, 웃기고, 유익한 영상도 찾아본다. 좋아하는 유튜버는 경제 유튜버 슈 카월드, 그리고 제주도 브이로거 윤이버셜.

그래도 보는 시간이 부쩍 줄었다. 재보지는 않았지만, (유튜브는 추천알고리즘을 사용하지 않으면 시청 시간이 기록되지 않아 시청 시간을 알 수 없다) 체감상 확실히 그렇다. 예전에는 매일매일 몇 시간을 붙들고 잠을 못 자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예 앱을 켜지 않는 날도 많다. 시간이 줄어든 것보다 좋은 점은, 콘텐츠를 보는 시간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책을 몇 배는 많이 읽게 되었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는 시간이 늘었다.

대전에서 자취하던 시절에 동네에 “You are what you read” 라는 간판을 단 책방이 있었다. 네가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것은 네가 어떤 사람이 될 지 정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뜻. 공감을 아니할 수 없었다. 유튜브를 많이 본다는 선택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과 기분과 태도를 먹여지기로’ 하는 것이 아닐까.

들어봐
어쨌든, 오늘은 낮잠 자다가 일어나 유튜브를 좀 봤는데, 좋아하는 영상을 ‘다시’ 만났다. 우주히피라는 인디밴드가 ‘들어봐'라는 노래를, 어딘지 모를, 꼬질꼬질한 공간에서 부르는 영상이다.

추천 알고리즘을 끄고 생긴 가장 큰 애로사항은 ‘그전에 봤던 재밌는 영상'을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언젠가 기숙사에서 이 영상을 너무 감명 깊게 봤는데, 나중에 찾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제목이 기억이 안 나서 찾을 수 없었다가, 오늘 우연히 다시 만났다. 정말 동네를 걷다가 옛친구를 마주친 기분이라 냅다 클릭해서 틀었다. 아마도, 영원히 남아있을 영상인데도 마치 곧 지나갈 열차처럼 느껴졌다. 그저 냅다 달려서 풍경을 어깨 뒤로 흘려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열차 말고, 창밖의 풍경을 보는 것이 달리는 목적의 전부인 열차.

다르다는 것, 다르지 않다는 것
가수가 (백 번을 넘게 봤는데도 사실 이름을 모른다.) 웃으며 부르는 가사가 계속 맘에 닿는다. ‘다르다는 것, 다르지 않다는 것.’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한참 붙어 다니던 키가 작고 무서운 친구가 있었다. ‘무서운'이라고 했던 이유는 그 아이가 소위 말하는 ‘가오'를 잡고 다녔기 때문이었는데, 당시에는 싸움하지 않아도 그 정도만 해도 무리에서 ‘~~짱' 대열에 꼈던 것 같다. 실제로 딱히 누군가와 싸우지도, 괴롭히지도 않았다. 맞붙으면 위험한 놈이겠지… 정도의 이미지랄까.

그 친구와 같이 다니면서 딱히 한 것은 없었다. 집에 가는 길이 비슷했고, (우리 집보다 조금 멀었다) 하교하면 같이 PC방에 가서 한두 시간 게임을 하는 게 전부였다. 다른 걸 하면서 놀 때도 있었지만, 보통 그러곤 헤어졌다.

PC방을 가기 전에는 항상 친구의 집에 들렀다. 그래야 친구의 어머니가 놀라며 용돈을 주셨기 때문이다. 언덕 중간에 있는 작은 원룸이었고, 집은 볕이 들지 않아 항상 불이 꺼져있거나, 어두웠다. 아주머니는 항상 누워계셨는데, 어딘가 아프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항상 안 계셨는데, 그때는 순수해서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모종의 가정사가 있었던 것 같다.

아주머니는 친구가 나를 데려오면, 친구와 놀라며 매일 천오백 원 내지 이천 원을 주셨다. 보통은 친구가 다 썼고, 기분이 좋을 때는 내 게임비를 내주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용돈을 매달 오천 원밖에 안 받았기 때문에, 천 오백 원을 받는 그 순간마다 그 친구가 부러웠다. 하루에 게임을 세 시간이나 할 수 있다니! (당시 동네 PC방 가격은 한 시간에 500원이었다)친구는 나를 부러워했다. 어느 날은 ‘너처럼 아파트에 살고 싶어.’라고 했는데, 그때는 전혀 이해를 못 했고, 그 말의 의미를 스무 살이 넘어서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아파트에 살았고, 친구는 원룸에 살았다. 용돈은 적었지만, 집은 항상 밝았고, 책이든 뭐든 풍족했다. 나는 PC방이 끝나면 학원에 가야 했지만, 친구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는 가끔 게임이 하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떼를 썼지만, 그 친구의 하교 후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분식점에서 오락기와 노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면서 사라졌지만,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달동네가 껴있고, 빈부격차가 심했던 동네. ‘보통'만 살아도 주목 받던 곳. 그런데 보통이라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매 학기 쓰는 종이에 ‘부모님' 이름을 적는 것이 불편한 친구, 학원에 가고 싶었던 친구, 아파트에 살고 싶었던 친구,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려서 맨발로 동네를 뛰어나와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던 친구. 그들 모두 내게는 보통의 친구들이었다.

예전에는 세상이 ‘어쩌다, 나와 다를 수도 있는 사람을 마주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다른 게 전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의 누구나 1초 만에 연결될 수 있는 세상, 바로 옆의 사람의 다른 점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은 같은 곳이다. 어쩐지 지금은 쏙 들어간 말이지만, 예전에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미디어에서 자주 썼다. 지구촌(Global Village)은 지구를 한 마을(촌, 村)처럼 생각해서, 빠르고 쉽게 연결되는 세상을 말한다. 영어권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마을에 산다'를 그런 의미로만 쓰지 않는다. ‘쟤'랑 같은 마을에 산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서로를 진짜로 이해해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누군가를 진짜로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 ‘빠르고 쉽게 만나는 세상'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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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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