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의료의 결합 '디지털 치료제'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부 주도적인 방식 보다 지차체 별 특색에 맞는 디지털 치료제 도입 모색해야
생태계가 조성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필요… 보험, 게임사 진입 허용해야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정비를 비롯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로 지적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시적 원격진료의 물꼬가 트게 되면서 디지털 치료제(DTx)에 대한 논의도 이어져오고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디지털 기술과 의료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치료제로 최근 예방 의료에 대한 공공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추세와 비교해 봤을 때 우리나라는 이제 임상단계에 돌입한 걸음마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는 이미 2017년 인지행동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를 허가했고 그 시장은 2020년 기준 약 42달러(약 6조186억원)의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비만, 당뇨 등 만설 질병에 적용도 가능해 글로벌 인구가 고령화되는 추세에서 차세대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 치료제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 간의 입장 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 분야에 본격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의료수가 문제를 비롯해 풀어야할 법적, 제도적 절차들이 산적해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비즈니스 관점에서 수익성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의 접근 방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29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관하는 '제81회 굿인터넷클럽'에서는 ‘디지털치료제(DTx) is coming’을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이 함께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테크42)

이에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관하는 ‘제81회 굿인터넷클럽’은 ‘디지털치료제(DTx) is coming’을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이 함께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디지털 치료제를 우리나라에 연착륙시키기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29일 개최된 이번 토론회는 한국멀티미디어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치용 동의대 디지털콘텐츠게임애니메이션공학부 교수가 좌장으로 나섰다. 패널로는 한덕현 교수(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명철 교수(경운대학교), 이동규 교수(동아대학교), 이영미 청년사업반장(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 정기용 박사(경기복지재단 경기청년지원사업단) 등이 참석했다.

투자업계도 관심을 보이는 디지털 치료제, 기원은?

디지털 치료제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일컫는다. 디지털 치료제에는 모바일 앱이나 게임,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IT 기술이 활용된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이제 막 열리는 초기 단계지만, 이미 벤처캐피털(VC)들의 관심은 뜨겁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18년 21억2000만달러에서 연평균 약 20%씩 성장해 2026년에는 96억4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는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eputics)의 ‘리셋(reSET)’이다. 술, 대마 등 중독증상 치료를 위해 개발된 앱으로,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의 아킬리 인터랙티브사가 만든 비디오 게임 형태의 ADHD 치료제 ‘엔데버Rx(EndeaverRx)’가 미국 FDA의 승인을 받기도 했다. 현재 FDA 승인을 받은 20여 개 제품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200여 개가 개발되고 있다.

라이프시맨티스는 식약처로부터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거쳐 확증임상 단계를 밟고 있는 국내 기업 중 하나다.

현재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인 기업은 40개 정도다.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없다. 하지만 임상시험계획 승인이 이뤄진 제품은 총 10건. 이 중 뉴냅스, 라이프시맨틱스, 웰트, 에임메드, 하이 등 5곳이 확증임상 단계를 밟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5곳 중에서 올해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덕현 교수는 "우리나라는 게임과 인터넷, 인간행동 변화에 대한 기술이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며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과 사용, 비즈니스 모델들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시기가 빨리 다가와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자원들이 유용하게 잘 사용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사진=테크42)

이날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한덕현 교수는 이러한 디지털 치료제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디지털 약’이라고 정의했다. 또 “기존 화학적 약물, 치료법에 한계, 부작용을 해결해주고 더 편리하고 새로운 방법에 대한 필요에 의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디지털 치료제의 개념은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잡히기 시작했는데 때때로 의료적인 혹은 산업적인 목적에 따라 정의가 좁혀지고 넓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기본 개념은 화학적 작용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 소프트웨어적인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치료제라고 얘기하는 것은 결국 의학적인 근거, 임상 효과에 대한 근거, 반복적 사용에도 비슷한 효과가 나오는 과학적 의학적인 시스템 하에서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죠.”  

지자체·공공 분야에서 시도되는 디지털 치료제

이날 패널로 참석한 이영미 반장은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 청년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가 디지털 치료제 토론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서울시가 올 9월부터 시범도입한 ‘디지털 마음건강 앱 서비스’와 관련있다.

이 반장은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취업난 등의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며 2030세대의 우울 위험도와 자살 생각률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서울시의 마음건강 앱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청년들의 정신건강 상담 자료를 토대로한 서울시 통계를 보면 2019년 4만건이었던 상담이 지난해 약 10만 건으로 2년새 2.5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청년층의 마음 건강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2020년부터 불안, 우울, 무기력감 등으로 힘들어하는 서울 청년들을 대상으로 마음건강지원사업을 추진해 왔고, 특히 올해는 7000여명까지 지원폭을 확대하고 있죠. 사실 이러한 디지털 마음건강 앱 서비스는 완전한 디지털 치료제라기보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의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웰니스 프로그램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 이영미 반장(왼쪽), 경기복지재단 경기청년지원사업단 정기용 박사(오른쪽). (사진=테크42)

한편 경기복지재단 경기청년지원사업단의 정기용 박사는 디지털 치료제의 특징을 ‘효과성’ ‘임상실험을 통한 안정성 확보’ ‘접근성’ ‘경제성’ 등 5가지로 설명하며 “디지털 치료제가 국내에 정착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직면한 지역 간 의료 서비스 불균형은 개선해야 할 문제다. 정 박사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데 디지털 치료제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정 박사는 “경기복지재단 경기청년지원사업단에서도 청년과 관련된 정책의 기본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며 “우울증,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서 디지털 치료제는 청년 뿐만 아니라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박사는 “2018년부터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 계획을 수립해 지자체 별 사회보장 정책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며 “중앙정부가 전 국민을 모두 커버할 수 없는 정책적 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 별 특색에 맞는 디지털 치료제 도입을 하는 방향을 가야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디지털 치료제 도입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디지털 치료제 도입이 본격화 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앞서 경기복지재단의 청년정책에 대해 설명한 정 박사는 올해부터 WHO(세계보건기구)가 게임 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도입한데 따라 우리나라도 2026년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게임업계로서는 위기지만, 정 박사는 이를 이용해 게임이용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정 박사가 언급한 것은 ‘규제 개혁’ 필요성이다.

“디지털 치료제의 발전, 그리고 공공 영역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규제 개혁입니다. 미국이나 독일에서 디지털 치료제의 규제 개혁 제도가 진행된 바 있고,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디지털 치료제 확산을 위한 다양한 규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디지털 치료제도 엄연한 약이니 만큼 앞서 제가 말씀드린 5가지 기준을 가지고 여러 헬스케어 기업들이 내놓은 디지털 치료제의 옥석을 가리는 준비도 필요하겠죠. 또 한편에서 언급되는 부작용 우려를 불식시킬 안정성 확보도 중요하고요.”

박명철 경운대학교 항공전자공학과 교수는 항공시뮬레이션, 시각화와 함께 헬스케어, IoT, 디지털 치료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테크42)

이와 관련 박명철 교수는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또 다른 핵심적인 논의점은 식약처 인허가와 결부돼 있다는 점,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결부돼 있는 보험 수가 적용에 대한 부분”이라며 “현재는 무의미한 시간이 가는 것 같은 논의가 이어지지만 규제 기관이 거부할 수 없는 생태계가 조성되면 해소되지 않을까 판단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 교수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비즈니스 모델 형성’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비즈니스 모델 형성을 위해 고심하는 것은 의료계 일부와 몇몇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전부인 상황. 이에 박 교수는 “정부 혹은 민간 차원의 생태계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생태계 구성을 위해서는 제3의 진입 요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가시적으로 가장 빠르게 시도할 수 있는 요소라면 보험사를 들 수 있죠. 단적으로 실손보험사들이 손해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피보험자의 건강을 관리해야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이 생태계 안에 실손보험사들이 진입한다면 좀 더 실질적인 활성화 대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좀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게임사나 인터넷 회사들의 진입을 유도할 수도 있겠죠. 이미 2020년 무렵에 FDA에서도 게임용 치료제가 승인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동규 동아대학교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재난관리 전문가로서 이날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사고와 같은 대규모 재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고통받고 있다"며 "이런 부분에 디지털 치료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테크42)

한편 이날 토론에 참석한 이동규 동아대 교수는 디지털 치료제 제도화를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이것을 약으로 볼 것인지, 또 규제 관점에서 의료기기로 볼 것인지, 혹은 고품질의 소프트웨어로 볼 것이지에 따른 여러 관점이 존재한다”며 의견을 밝혔다.

“약으로 보자면 새로운 신약의 출연으로 볼 수 있겠죠. 치료 기기 개념으로 들어가면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해야 하고, 그래서 임상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강화해야 된다는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신약이나 기기가 아닌 하나의 소프트웨어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하면 기존 의료기기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와도 연결됩니다. 사실 제도권에서 이부분에 대한 평가나 심사를 하는 쪽은 이러한 관점 논란이 굉장히 곤혹스러울 겁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미국과 독일의 사례를 들어 ‘메티컬 디바이스’를 새로운 섹터로 보는 관점을 언급했다. 기존 전통적인 시각을 넘어서 산업 발전 측면에서 접근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패스트트랙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 진입을 우선 허용하는 방안, 우리로 치면 규제 샌드박스와 비슷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와 유사한 체계를 갖고 있는 독일의 경우 디지털 치료제를 기기로 구분해 보험 급여에 ‘예비 등재’ 방식으로 선제적 등재를 하고 대신 안정성과 치료 접근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어 이 교수는 “디지털 치료제 제도권 진입을 위한 규제 관점에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장치들을 (다른 나라 사례를 참고해)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어진 토론에서는 디지털 치료제의 법적 기준 확립과 제도적 지원, 기존 개념을 넘어선 임상 절차 적용 등의 논의와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제도적, 환경적인 문제, 인식 개선의 문제도 지적됐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대체로 ‘디지털 치료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희망적”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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