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여러분들은 보셨나요? 요즘 저는 뒤늦게 애청자가 되어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7·8화의 ‘소덕동 팽나무’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데요. 드라마 속 팽나무는 도로 공사 계획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하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소덕동의 팽나무처럼 우리나라에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13,859그루의 나무가 있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있었나요? 이 특별한 나무의 이름은 ‘보호수’입니다. 이번 글은 뒤늦게 ‘우영우’에 빠져 보호수 데이터까지 탐색해본 저의 여정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번 여정을 위해서는 보호수 데이터가 필요했습니다. 보호수 지정 현황과 관련된 데이터는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개방 포털’과 ‘산림청’ 두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두 기관 모두 같은 주제의 데이터를 담고 있지만 구성하고 있는 항목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산림청 파일에는 위·경도 데이터가 없지만 반대로 지방행정 포털에는 있거나, 그외에도 둘 중 한 곳에만 있는 항목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보다 많은 인사이트를 도출해보기 위해 두 데이터에 공통으로 있는 ‘시군구’와 ‘지번 주소’를 기준으로 취합하고 정제한 후 탐색하였습니다. 정제 과정에서 정확한 정보를 담지 못한 데이터는 제외하고 분석했습니다.
‘보호수가 무엇일까요?’라고 물으면, 우리 모두 어렴풋이 그 뜻을 알 수 있을 텐데요. 정확한 정의로는 ‘보호수’란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어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어 지정된 나무를 말합니다. ‘보호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의 종류(수종)는 앞서 언급한 드라마 ‘우영우’의 팽나무 외에도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다양합니다.
보호수의 수종 분포를 보여주는 위 그래프를 보면, 막대의 절반 이상이 느티나무라는 점이 바로 눈에 띕니다. 느티나무는 우리가 평소 걷는 길거리에서 ‘가로수’의 형태로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보호수에서도 존재감이 큰 나무였어요. 무려 55%를 차지하고 있는 느티나무는 수명이 길고 성장이 왕성해 그야말로 보호수에 최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뒤를 팽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회화나무, 향나무가 잇고 있는데요. 이 7가지의 수종의 존재 말고도, 전체의 12%가 ‘기타’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호랑가시나무, 멀구슬 나무, 구지뽕나무 등 조금은 생소한 이름을 가진 116종의 나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호수의 데이터만 봐도 우리나라에 사는 다채로운 수종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소덕동 사람들 중에 어린 시절 저 나무 타고 안 논 사람이 없고 기쁜 날 저 나무 아래서 잔치 한번 안연 사람이 없고 간절할 때 기도 한번 안 한 사람이 없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화 대사 中
위 대사는 드라마 ‘우영우’의 팽나무 에피소드 속 마을 이장님의 대사입니다.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보호수는 사람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보호수의 유형 분류 체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산림청이 제공하는 보호수 유형 구분표에서는 보호수를 일반 유형과 세부 유형으로 나눕니다. 먼저 일반 유형을 기준으로는 노목, 거목, 희귀목으로 분류해요. 이를 통해 나무의 나이, 크기와 굵기, 희귀성이 보호수 선정 시 고려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부 유형을 기준으로는 7가지로 나뉘는데요! 역사적 인물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명목부터 과거의 이야기를 담은 보목, 제사의 대상이 되는 당산목,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정자목, 방파제 역할을 하는 호안목, 형상이 기이해 관상 가치가 높은 기형목, 마을의 경관유지를 담당하는 풍치목 등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의미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무의 본캐 ‘공기 정화, 온실가스 흡수’ 등의 환경 관점의 역할 말고도 ‘문화·역사·인문’ 분야의 관점에서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보호수의 세부 유형 분류를 통해 나무에 대한 새로운 관점, 나무의 ‘부캐’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약 13,000그루의 보호수는 각각 어떤 유형에 속할까요? 시각화를 통해 답을 알아보았습니다.
위 차트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약 13,000그루의 보호수의 분류 체계를 나타낸 생키 다이어그램입니다. 왼쪽 노드는 보호수의 일반 유형을, 오른쪽 노드는 세부 유형을 나타내고 있어요. 표에서 봤던 것처럼 일반 유형은 크게 노목(오래된 나무), 거목(크고 굵은 나무), 희귀목(드물고 귀한 나무)으로 구성되고 이 중 2~3가지가 섞인 유형도 있습니다. 회색 막대의 길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 보호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 유형은 ‘노목’으로 67%를 차지합니다.
왼쪽 노드들은 가운데의 곡선을 타고 7가지의 세부 유형으로 분류해볼 수 있는데요! 곡선들이 대부분 정자목, 당산목, 풍치목으로 흘러가는 게 보이시나요? 다른 세부 유형 중에서도 이 3가지의 유형에 보호수가 편중되어 있어요. 한편, 일반 유형 기준으로 구성 비중이 가장 큰 노목은 보목, 명목, 호안목 등 소수의 세부 유형으로도 분류되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만큼 이들을 보호해야 할 이유 또한 다양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보호수의 67%가 노목(오래된 나무)이라고 설명해 드린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뿌리 깊은 나무들은 도대체 얼마나 긴 세월을 견뎌온 것일까요? 아래 차트는 보호수 나이별 나무의 분포를 나타냅니다. x축은 나무가 심어진 연도를, 원의 크기는 해당 연도에 심어진 나무의 그루 수를 의미합니다.
차트를 보면 1700-800년대 사이에 겹쳐 있는 큰 원들이 먼저 눈에 띕니다. 가장 큰 초록색 원에는 1722년에 심어져 무려 300살이 된 보호수 993그루가 속해 있는데요. 1722년부터 성장해 왔다는 건 조선시대 중반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네 번의 시대 변화를 함께 겪어왔음을 뜻해요.
그러나, 보호수의 세계에서 300살은 어린 나이에 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300년이라는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1000년 이상 산 나무가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최고령 나무는 1,343세로, 현재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렇게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부터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설화나 전설이 그 증거가 됩니다. 실제로 1343살 최고령 나무는 통일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장안사 위쪽에 척판암을 지을 때 그 근처를 지나가던 문무왕이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점은 보호수라고 해서 무조건 몇 백년 이상 산 오래된 나무는 아니라는 겁니다. 차트에서 가장 오른쪽 끝에 위치한 원을 보면, 1985년부터 성장해온 37살 나무도 있는데요. 비록 특정 구간에 보호수가 편중되어 있지만, 최고령 나무와 최연소 나무 사이의 간격이 1000년 이상 차이 나는 것을 보면, 다양한 나이대가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앞서 상대적으로 어린 보호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는데요! 그 의미는 ‘꼭 오래되지 않더라도 그 가치만 있다면 보호수로 지정하고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에도 어딘가에 숨어져 있을 보호수를 찾고 지정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보호수의 지정 연도 현황을 라인 차트로 시각화해보았습니다. ‘보호수’라는 단어가 산림법(현재 산림보호법)에 처음 명시된 것은 1980년인데요. 그전까지만 해도 ‘노거수’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1972년 산림청은 산림법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노목이나 거목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조항을 신설했는데요. 이때부터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에 일련의 고유번호를 매기고 본격적인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 산림청은 노거수를 보호수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노목과 거목 뿐만 아니라 희귀목까지 포함해 더 많은 나무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였어요.
차트를 보면, 보호수가 법적으로 명시된 후 1982년 전국 곳곳에서 보호수의 지정 활동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어요. 그 결과 약 6,000그루의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요. 그 이후에도 수치의 차이가 있지만 어딘가에 자라고 있을 보호수를 발견하고 지정하는 활동이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아본 보호수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이번 글에서는 보호수의 정의부터 수종, 구분 유형 그리고 나이, 그리고 보호수를 찾는 우리의 노력까지 보호수의 세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우연히 드라마를 통해 ‘보호수’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번 글을 기획하면서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이 한 폭 더 넓어질 수 있었죠. 나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후 변화’에만 있지 않다는 점 또한 명확해졌고요. 특히 보호수를 알아가면 갈수록 사람들과 수백 년을 동고동락한 인격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은 글의 가장 처음 언급했던 우영우의 팽나무로 이번 글을 끝맺어보려고 합니다. 소덕동 팽나무로 이름을 알렸던 창원시 북부리 팽나무가 실제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는 소식을 여러분도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전국의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팽나무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인데요. 팽나무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에는 없던 펜스까지 설치해 직접적인 접촉을 막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분들도 오늘은 주변에 보호수가 있는지 둘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무심코 지나친 나무가 몇백 년 이상 살아온 보호수일 수도 있으니까요 : )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