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신약개발을 비롯한 바이오 산업은 유망한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1600조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제약·바이오 분야의 기술 개발에 시작이자 바탕이 되는 것이 자료조사다.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글로벌 바이오 리서치 시장 규모 역시도 수십조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미래 산업으로 평가받는 제약·바이오 분야지만 유독 리서치 분야만은 노동집약적인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직접 조사 대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DB) 서비스를 용할 경우 연간 수천만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는 이 분야와 관련된 VC 업계의 바이오 분야 심사역, 애널리스트, 연구원들이 겪고 있는 공통된 페인포인트(pain point)다.
지난해 창업한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는 이렇듯 진입장벽이 높으며 여전히 비효율이 존재하는 바이오 리서치 분야에 자연어처리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자동화하는 기술을 선보이며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스타트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라는 사명은 “특정 분야를 주도하는 기업의 명칭은 직관적이고 대표성을 띄어야 한다”는 이상윤 대표의 생각이 반영됐다. 그 사명과 같이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가 선보이는 기술은 바이오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정형화한 후 DB 형태로 제공한다. 이때 논문을 비롯한 특허, 기사 정보 등은 AI가 분석·가공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제까지 수작업 혹은 한정된 DB에 의존해 노동집약적으로 이뤄졌던 조사 과정을 완전 자동화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창업 1년이 채 안된 스타트업이 올해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5년 내에 매출 200억원, 영업이익 13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마루180에서 진행된 이상윤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런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약학 전공, 백신 연구원, VC 심사역을 거친 이유는 ‘창업’
스타트업에 있어 패기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하지만, 이상윤 대표의 그것은 여느 스타트업과는 조금 달랐다. 알고 보니 그 자신감의 원천은 그가 거쳐온 지난 시간들에 있었다. 1992년생인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동물생명공학 학사와 약대 석사를 졸업했다. 첫 창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것은 졸업 무렵이었다. 이 대표는 “신약개발이 첫 창업 아이템이었다”며 당시 이야기를 털어놨다.
“바이오 분야에서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중학교 시절부터했어요. 그래서 전공부터 그에 맞게 동물생명공학과, 약학과를 선택했죠. 이곳저곳에서 인턴도 하고 석사 2년 동안에는 신약 개발 후보 물질 특허 작업에도 관여했어요. 그러다 준비가 됐다 싶어서 신약을 개발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이자 지도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고수익과 함께 위험도도 높다는 의미)한 분야고 오랜 경력과 인프라도 뒷받침 되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스스로의 상황과 비즈니스 모델(BM)의 한계를 깨달은 이 대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세포기반 면역치료 백신 등을 개발하는 셀리드, 헬스케어기업 휴온스 등에서 한동안 연구원 생활을 했다. 이후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돌연 VC 업계로 전직을 한 것이다. HB인베스트먼트의 바이오 투자 심사역으로 변신한 그는 노벨티노비릴티, 블루엠택, 인세리브로 등의 투자를 담당하며 바이오 스타트업계에 대한 인사이트를 쌓고, 자신만의 BM을 찾았다.
“대학시절 투자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바이오 분야 투자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 생소한 일은 아니었어요. VC 바이오 투자 심사역을 하며 약 300억원 정도 투자를 진행하면서 항체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세포 치료제, 의료기기, 케미칼 등을 골고루 경험할 수 있었죠. 바이오 스타트업과 관련된 연구 기획과 기술 이전, 규제 문제 해결 등 대부분을 직무를 거치면서 니즈를 찾게 됐어요.”
아무도 하지 않는 것,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약 개발 아이템으로 창업을 구상했던 이 대표였기에 VC 투자 심사역을 거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 종사자, 스타트업이 겪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나름 전문적인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페인 포인트가 바로 조사 과정에서 이뤄지는 막대한 서류 작업이었다.
“제약을 비롯해 바이오와 헬스케어 어느 분야 든 결국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리서치를 위한 서류 작업이었어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찾아 정리하고 표를 만들어 판단하는 힘든 과정이죠. 그런 걸 고연봉, 고학력의 연구원들이 노동집약적으로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걸 자동화해보자’는 결심을 했죠.”
그가 떠올린 것은 자연어처리 AI 기술을 통한 자동화였다. 하지만 이 기술로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을 알아야했다. 심사역 업무를 하며 짬을 내 개발과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또 사이버대학을 통해 데이터 사이언스와 빅데이터 공부를 비롯해 자연어처리 AI와 관련된 공부에 집중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학원 수업을 통해 보충했다. 그렇게 그는 2년여 만에 웹과 앱, AI 개발이 가능한 전문 역량을 쌓았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해 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사이버대 학사는 이번에 졸업을 했고 석사도 곧 진행할 계획이에요. 제가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웃음),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2년 정도 공부를 하다 보니 기본적인 건 제가 개발할 수 있게 되더군요. 그래서 지난해 초부터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로 선보일 기술의 초기 버전을 개발하고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많이 준비했지만… “창업, 역시 어려워”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를 창업 후 ‘자연어처리 AI 기반 제약·바이오 리서치 및 업무 완전자동화 소프트웨어’ 초기 버전을 가지고 그간의 경험을 살펴 지원 사업과 투자 유치에 나섰다. 제약·바이오 분야 연구원들이 업무 시간의 70%를 투자하고 있는 서류 작업을 자동화하겠다는 비즈니스 모델은 단숨에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VC에서 바이오스타트업을 발굴하던 투자심사역이 직접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점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지난해 10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인 디캠프가 주관한 ‘디데이 X캠퍼스리그'에서 디캠프상을 수상한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는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기업가 정신 플랫폼 ‘마루180’ 입주 기업에 선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11월에는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크릿벤처스, 소풍벤처스 등 기관 투자자와 서울대 교수, 상장사 대표를 비롯한 6명의 엔젤 투자자로부터 10억원 규모의 시드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시드투자를 통해 유치된 자금으로 이 대표는 본격적인 상용화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함께할 팀원을 모집했다. 모든 것을 경험했기에 이 과정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을 법하지만, “실전은 역시 달랐다”는 것이 이 대표의 고백이다.
“매순간이 어려웠어요(웃음). 예전 VC 투자심사역을 할 때 수백곳의 회사를 검토하고 13개 회사에 실제 투자를 했던 적도 있지만, 제가 창업을 해 보면서 그때 뵈었던 대표님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름대로 오랫동안 이 아이템을 생각하면서 엄청나게 조사했고, 저 스스로도 VC 업계에 있으면서 아는 심사역 분들도 많았지만 막상 부딪히니 열에 네다섯 분들에게는 투자를 거절 받기도 했죠. 기대와 다른 상황을 종종 맞이하며 마상(마음의 상처)도 적잖이 입었죠(웃음).”
이 대표가 꼽는 또 다른 어려움은 팀빌딩이었다. 현재 9명으로 구성된 팀을 모으기까지 이 대표는 200여명을 대상으로 회사 소개와 비즈니스 모델, 사업 비전을 제시해야했다. 아무리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해도 이제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합류를 결정하는, 또 이 대표 스스로 원하는 인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제 설명을 듣고 한번에 저희 제품을 이해하시는 분은 3명 정도였어요. 아예 만나지도 않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감정적인 소모가 심했죠. 그렇게 프론트엔드, 백엔드 개발자와 AI 개발자, 데이터 엔지니어, 전략기획, UX·UI 디자인, 경영지원 등 함께할 분들을 모았어요.”
그렇게 선발한 인원을 이끌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업무 방식 조율, 권한의 부여, 보상과 인정 등 모든 것이 고민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그 과정을 거치며 여러가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사람을 모을 때부터 저는 사실 누구든 설득해서 포기하지 않고 무조건 만들어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제일 우려하는 것은 제가 뽑은 사람으로 인해 제가 뽑은 또 다른 사람이 속상한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불합리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또 보상과 인정은 확실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시작은 단독 창업이었지만, 제 비전에 공감해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분, 특정 역할과 책임을 맡길 수 있는 분들에게 파운더(founder)로 명함을 드렸어요. 올해 상반기 중으로는 지분도 드릴 예정이고요.”
이러한 이 대표의 운영 철학에 공감해 최근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에는 각 분야의 인재들이 새롭게 합류하고 있다. 박천균 CAIO(Chief AI Officer, 최고인공지능책임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박 CAIO는 연세대 응용통계학 박사 출신으로 테서, 바이오에이아이, 손랩 등 다양한 AI 헬스케어 기업에 근무한 전문가로 신약개발, 임상 통계 방법론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최근까지 임상시험 플랫폼 기술로 창업 경험까지 갖춘 창업가 출신이기도 하다.
박 CAIO는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 합류와 관련해 "“운이 좋게 제가 경험한 도메인과 동일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 합류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제약, 바이오 텍스트 도메인 지식을 반영한 인공지능 모델링을 개발해서 세계 최고 성능을 달성하고 싶다"는 각오를 내비치기도 했다.
바이오 리서치 분야 패러다임을 바꿀 ‘치트키’ 선보일 것
그렇다면 현재 상용화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는, 개발에만 몰두해 아직 제품명조차 정해지지 않은 이 기술은 과연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이 대표는 현재 제약·바이오 분야의 현실과 함께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의 ‘자연어처리 AI 기반 제약·바이오 리서치 및 업무 완전자동화 소프트웨어’의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서 최근 2~3년동안 코로나백신이나 치료제 개발하는 회사가 150개 정도 됐고, 임상시험이 60건 정도 진행됐어요. 비용은 정부지원금 포함 거의 5000억원이 소요됐죠. 하지만 투자금의 10%조차 회수한 회사는 하나도 없어요. 한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인류가 겪는 전체 질환을 해결하기 위한 헬스케어 시장은 2800조, 그중에 900조 원가량이 연구개발에 들어가요. 그 중에 낭비되는 돈은 절반 이상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그 이유가 연구개발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정형 데이터를 정형 데이터로 바꾸기 위한 서류 작업의 한계 때문이라는 거죠.”
이 대표가 지목하는 서류작업의 비효율성, 즉 리서치의 비효율성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취합하고 데이터화하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것이 적지 않고, 오류가 수정되지 않으면서 정확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 대표에 따르면 심지어 수백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연구개발을 논문 몇 건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자연어처리 AI 기반 제약·바이오 리서치 및 업무 완전자동화 소프트웨어’는 세계 각지의 연구기관, 학교, 의료기관 등에 분산돼 있는 비정형 데이터를 자연어 처리 모델이 분류하고 키워드를 추출해 정형화한다. 이 데이터 베이스는 챗봇과 연결해 대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약·바이오 분야의 데이터는 모두 공용어인 ‘영어’로 이뤄져 있어 언어 구분을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상용화 제품 자체로 글로벌 시장 공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외에도 이 대표는 이 데이터를 키워드마다 분류를 해 개인 맞춤 기사(리포팅)을 발행하는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이해도와 읽는 속도 등을 고려해 검색자에게 최적화된 데이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특정 키워드와 관련된 전 세계 웹상 기사를 모두 가져오는 것은 물론, 그것을 분석해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자동으로 기사를 만들기도 하죠. 이는 해당 기사를 보는 사람의 관심도에 맞춰 매일 5개씩 제공돼요. 또 기존 방법으로 ‘시신경 척수염의 경쟁 약물 리스트 조사와 각 임상시험 최근 동향’을 조사하려면 PPT를 만드는 것만 석달 정도가 걸려요. 하지만 챗봇에 요청을 하면 정리된 약물 리스트와 최근 임상시험 동향을 확인할 수 있죠. 최근 ‘챗GPT’가 주목받았지만, 이는 2021년 데이터까지만 학습이 돼 있어 ‘2주전 알츠하이머 신약 승인 목록’ 등과 같은 최신 데이터는 모르고 있죠. 즉 저희는 제약바이오에 최적화된 버티컬 AI 자동화 솔루션인 셈이에요.”
즉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가 선보이는 기술은 크게 제약·바이오 분야의 관심사 기반 자동 기사 제공 서비스와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로 나뉜다. 이 대표는 “기사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되며 이달에 선보일 예정이며,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는 올해 9월 유료 서비스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대표가 언급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시기’도 그 무렵이다.
이 대표는 “현재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셋을 쌓아가는데 집중하는 중”이라며 “그 과정에서 확보된 데이터 리스트, 라벨링한 데이터셋, 그것으로 모델링한 AI 모델 등이 모두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창업을 하지 않고 전공을 살려 연구원이나, VC 심사역으로 사는 것도 이 대표 개인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애써 공부할 필요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기술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뭘까? 마지막 질문에 대한 이 대표의 답은 역시 범상치 않았다.
“철이 좀 빨리 든 편이라… 중학교무렵부터 제 인생이 예측되더라고요. 직장생활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다 보면 노후를 맞이 할 텐데, ‘그렇게 평범하게 살려면 굳이 내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가 뭘까’를 고민했어요. 그런 삶이라면 굳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역할을 해도 될 테니까요. 그 생각을 하면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일, 사회에 뭔가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지금 하는 일이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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