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와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규제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플랫폼의 과(過)도 있지만 공(功)도 적지 않아… 배민 ‘리뷰운영정책’ 등 자율규제 사례 제시
공정위, 플랫폼에서 비롯되는 여러 이슈 중 ‘독과점’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
구글, 애플을 비롯한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의 한국 시장 공략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른바 토종 빅테크로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해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야놀자 등 유니콘으로 등극한 각 인터넷 기반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들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 국내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들 중에는 갑질, 시장 독점 등의 이슈로 인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에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지난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와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자율규제’를 정책 방향으로 설정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주요 서비스 먹통 사태 이후 정부와 국회에서는 다시금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며 정책 방향을 급선회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제정된 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이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에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이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했고, 그 결과가 가맹택시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심사지침의 적용 대상을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 제공을 업으로 하는 사업자’ 등과 같이 포괄적 명시해 놨다는 점이다. 이는 카카오, 네이버와 같이 대기업 수준으로 커진 빅테크 외에도 유니콘을 꿈꾸는 수많은 IT·테크 기업들 역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스타트업얼라인언스와 소비자권익 포럼이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플랫폼 자율규제와 소비자 보호 토론회’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정부가 취하고 있는 법적 플랫폼 규제보다 자율규제가 더 효과적이라는 각계 전문가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강력한 법적 규제… 소비자편익 2.2조원 감소할 것
국민의힘 소속 김성원 의원, 박대출 의원의 축사와 함께 최항집 스타트어얼라이언스 센터장, 양세정 소비자권익포럼 이사장의 환영사로 시작된 이날 토론회는 ‘자율규제를 통한 소비자 편익’을 주제로 한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의 발제로 이어졌다.
전 교수는 호텔링 모델(Hotelling model, 미국 경제학자 헤럴드 호텔링이 제시한 이론, 공급경쟁이 치열해지면 공급자의 시장 위치나 시장 가격 등 상품 구성요소가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자율규제라고 하면 기업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양한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자율규제의 규제 수준이 오히려 더 높은 사례도 많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전 교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규제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강조하며 “비즈니스와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중에는 법적 규제를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소비자 편익 경제 모델을 들기도 했다. 즉 법적 규제 시행 시 예상되는 소비자 편익에 비해 발생할 수 있는 직·간접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서비스나 제품의 가격이 오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시 소비자 편익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것이다.
전 교수에 따르면 법적 규제로 인한 수수료 인상효과와 이로 인한 상품 가격 전이를 ‘소비자 잉여 변화 계산식’을 적용해 추정한 결과, 강력한 법적 규제 도입으로 감소할 소비자 편익은 최대 2.2조원에 달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 교수에 이어 이현재 우아한형제(배달의민족 운영사) 이사가 참석해 ‘소비자를 위한 배달의민족의 자율규제’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진행했다.
이 이사는 “배달의민족이 서비스를 해 오며 공과도 있지만, 굉장히 다양한 삶의 변화, 일상의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며 “그런 긍정적인 변화들이 다른 다양한 스타트업들, 그리고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기업들에게 좋은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자사의 자율규제 사례를 설명했다.
이 이사가 꼽은 배달의민족 서비스 자율규제로는 ‘리뷰운영정책’ ‘식품안전협력강화를 위한 협약’ ‘위생등급제 활성화’ 등이 있다. 그는 특히 리뷰운영정책과 관련해 업체들이 부정한 방식으로 홍보 리뷰를 할 경우 고발 조치나 경고를 통해 ‘소비자들이 믿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강조하며 “한해 11만건 이상의 리뷰를 확인하고 의심 제보도 받아 탐지하는 활동을 지속하며 부정한 리뷰가 굉장히 감소되는 추세”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세 번째 발제를 맡은 이오은 온라인쇼핑협회 중개자 자율준수위원회 위원장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안전 조치와 통합 모니터링센터 운영 등의 활동을 소개하며 2007년 3월 출범한 자율준수위원회의 역할,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자율준수규약 등을 설명했다.
급변하는 서비스·기술에 대응 필요, 신뢰를 기반으로 논의돼야
학계와 업계 전문가 발제 이후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서희석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좌장으로 박신욱 경상대 법학과 교수, 정혜련 경찰대 법학과 교수, 김세준 경기대 법학과 교수, 선지원 광운대 법학과 교수 등이 플랫폼 기업의 법적 정의와 국내외 규제 입법 동향 등을 설명하며 자율규제와 관련된 저마다의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를 가졌다.
또한 조윤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등 소비자 단체장 역시 참석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부 측에서는 박설민 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플랫폼정책과장이 참석해 각계의 의견 수렴과 더불어 정부가 계획한 자율규제 관련 계획 등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첫 토론 발표에 나선 박신욱 교수는 “플랫폼 자율규제는 탈규제와 동일시 할 수 없다”며 당근과 채찍을 확실히 마련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최근 다시금 논의되고 있는 온플법(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과 관련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박 교수는 “이미 공정거래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이 존재하고 있고 관련된 심사지침도 마련돼 있는 상황에서 왜 EU의 디지털시장법(DMA), 디지털서비스법(DSA)를 표방한 법률안이 나온다는 것이 의문스럽다”며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볼 때 가장 중요했고 해결하기 힘겨웠던 문제는 기술 발전과 산업구조의 변화를 어떻게 주조할 것인가, 혹은 그 흐름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혜련 교수는 미국 방송통신법 전문가로서 국내외 빅테크로부터 불거진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문제들과 함께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를 비롯해 EU의 규제 움직임에 대해 분석했다.
또한 정 교수는 기업의 독과점과 개인정보보호 문제, 다크패턴(기업들이 자사 사이트나 앱을 통해 사용자들을 교묘히 유도해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에 가입하게 하는 방식)과 같은 소비자 기만행위에 대해 지적하며 “독과점 해결을 위한 국내 차원의 도구 및 규제 개발 모델을 개발하고 다크패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민관 협업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소비자 단체 측에서는 조윤미 상임대표가 먼저 나서 “플랫폼 서비스 산업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예측 불가능한 수준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할 것”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한 거래, 조건이 형성될 가능성, 유해 콘텐츠가 굉장히 많이 생산될 가능성, 악의적인 알고리즘(다크패턴)이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 대표는 자율규제 일변도의 논의만 이어지는 것은 우려되는 상황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플랫폼 산업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새로운 소비자 문제 발생 가능성을 고려해 법에서 규제의 기본 원칙이나 방향성을 먼저 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 대표는 “산업계와 소비자단체, 정부 등이 모두 함께 공동 논의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세준 교수가 자율규제와 관련 ‘기존 규제와 다른 새로운 규제의 모색’이라는 정의와 함께 플랫폼 자율규제가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신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힘’ ‘기업 스스로 장기적인 사업의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규제 예측’ ‘사업자 단체의 공동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거버넌스 협력’을 비롯한 다섯 가지를 요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어 선지원 교수는 “자율규제는 완결되고 고정된 개념이 아닌,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변화하는 움직임”이라고 규정하며 “일률적인 자율규제 방식을 공적 주체가 개입해 도입하는 것은 그 취지와 달리 자율규제의 효과성을 몰각 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소비자연맹의 정지연 사무총장은 최근 화제가 된 ‘챗GPT’가 분석한 ‘한국의 자율규제에 대한 소비자 관점’의 의견을 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정 사무총장이 언급한 ‘챗GPT’의 분석 내용은 “자율규제는 소비자들의 안전하고 신뢰성 높은 서비스 이용 환경 조성에는 큰 역할을 하지만, 플랫폼 자체이익을 우선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규제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규제 효과를 지속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였다.
이와 관련 정 사무총장은 “굉장히 명확하고 똑똑한 답변에 놀랐다”며 “(챗GPT의 말처럼)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의 보호를 위해 중요한 것은 소비자 피해의 사전적 예방과 피해구제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토론 발표에 나선 공정위 박설민 과장은 “플래폼 시장은 다면 시장이자 양면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플랫폼 시장에 속한 소비자, 기업, 소상공인, 스타트업 등의 작은 플랫폼 등이 공존하는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과장은 “공정위는 플랫폼에서 비롯되는 여러 이슈 중 독과점 이슈와 관련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라며 “독과점으로 인해 경제적 비효율성이 초래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 비효율성을 치유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과장은 앞서 발제 주제인 배달의민족 리뷰정책과 관련 “사업자의 자율규제 노력의 일환으로 의미가 있다”며 “자율규제는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잘 통제한다는 개념으로, 이를 중소상공인,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사업자들도 많은 노력 중으로 알고 있다”며 신뢰를 전제로한 지속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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