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편- 김재혁 레티널 대표 “독자 기술로 개발한 광학렌즈로 글로벌 매출 1조 달성, 곧 다가올 AR글래스 시대라면 가능하죠”

동공보다 작은 거울로 8K 고해상도 구현한 핀미러, 넓고 선명한 화면 만드는 핀틸트 기술 독자 개발
누적 투자유치 320억원… 2017년 시제품 출시 이후 지난해 한국·미국·유럽 매출 20억 달성
2026년까지 AR글래스용 광학렌즈 글로벌 시장 점유율 30%, 매출 1조원 달성할 것
레티널이 CES 2023에서 선보인 AR글래스 시제품 '케플라'. 레티널이 개발한 광학렌즈가 적용됐다. (이미지=레티널)

모바일 인터넷 시대를 연 스마트폰이 직면하는 새로운 혁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의 종말이 아닐까? 사실 이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된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oce)’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스마트 워치가 상용화됐고, 각 글로벌 빅테크에서 개발에 나서고 있는 AR(증강현실) 혹은 VR(가상현실) 글라스의 상용화도 예견 돼 있다.

물론 이미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로렌즈를, 메타가 오큘러스 퀘스트 등을 선보이긴 했지만 무겁고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이를 진정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애플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디자인 랜더링 이미지만을 공개하며 변죽을 울리고 있는 스키 고글 형태의 AR 헤드셋 ‘리얼리티 프로’ 역시 그 한계는 크게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든 홀로렌즈2로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마이크로소프트)

그렇다면 진정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로서 AR글래스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우선은 스마트 워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옷, 안경, 목걸이, 신발과 같이 착용하기 쉽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편의성을 꼽을 수 있다. 사물인터넷 디바이스 점에서 통신이 연결되고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가 연결되며 데이터 수집 등이 가능한 항상성도 필요하다. 착용의 피로감은 물론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안정성도 필수다. 또 사용자가 속한 사회·문화적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성도 갖출 필요가 있다.

다행히 기술의 발달 속도는 인류가 경험했던 그 어느 시기보다 빠르다. 더구나 챗GPT의 등장으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즉 디바이스에 장착할 소프트웨어는 이미 등장했으니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AR글래스만 등장한다면 스마트폰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서 더 일찍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독자 기술로 개발한 AR글래스 전용 광학렌즈로 글로벌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타트업, 레티널(LetinAR)의 김재혁 대표는 그 시기가 2~3년 내에 도래한다고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되면 레티널의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30%,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김재혁 대표의 인터뷰는 그렇게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됐다.

연이은 CES혁신상, AR글래스용 광학렌즈의 기술적 난제 풀었다

김재혁 레티널 대표. (사진=레티널)

레티널은 2016년 무렵 한양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재혁 대표가 고교동창인 하정훈 CTO와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창업의 기반이 된 아이디어는 놀랍게도 고교시절 하 이사가 낙엽의 구멍으로 투과되는 빛에서 떠올린 ‘바늘구멍 사진기’ 원리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여기에 거울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물체의 상을 렌즈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산업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와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하 CTO가 힘을 합쳐 개발한 것이 핀미러(PinMR), 핀틸트™(PinTILT™) 기술이 적용된 AR글래스용 광학렌즈다. 원리는 간단하다 동공보다 작게 만들어 진 구멍에 장착된 렌즈를 통과한 빛은 기울어지게 배치된 작은 거울을 통해 화면으로 구현된다. 어려운 것은 안경 렌즈와 비슷한 정도로 얇은 렌즈안에 이 모든 것을 압축해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창업 이후 수년에 걸친 연구 개발로 기술 구현은 물론 양산성 기준까지 맞춰낸 레티널은 지난해 처음으로 20억의 매출을 기록했고, 나아가 오는 2026년 매출 1조원을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루 앞둔 날 난데없이 구글과 애플이 AR글래스 사업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는 본의 아니게 김 대표에게 던진 첫 질문이 됐다.

Q 구글이 AR글래스 사업을 중단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또 애플 역시 스키 고글 형태의 AR 헤드셋 개발과 관련해 내부 진통이 있다고 하고 있고요. 레티널이 생각하는 AR글래스 상용화 시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김재혁 대표(이하 김)_ 저희가 바라봤을 때 아직은 (AR글래스를 개발하는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많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 이 시장은 점진적인 성장보다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그런 성장은 시장의 변화를 이끄는 몇 개의 빅테크 기업들의 각축전이 될 거고요. 그중 가장 유력한 기업이 애플이라 할 수 있죠. 구글도 사업을 중단했다고 하지만, 사실 중단된 것은 구글글래스가 2012년 처음 등장한 이후 진행되던 엔터프라이즈 버전이예요. B2B(기업 대상 비즈니스) 영역에서만 활용되는 것이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에 많이 밀렸던 거죠. 또 구글은 2012년 이후 투자를 통한 신기술 개발이나 신제품을 내 놓지도 않았고요. 여러 버전이 존재하긴 하지만 기능이나 기술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고 안드로이드 버전 업데이트에 맞춰 바뀐 정도의 수준이었죠. 하지만 B2C(고객 대상 비즈니스) 수준의 일반 사용자를 위한 디바이스 개발은 다른 계획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어찌됐든 글로벌 빅테크 조차 개발에 난색을 표하는 상황에서 레티널은 최근 CES2023를 통해 선보인 AR글래스 시제품 ‘케플러(KEPLAR)’로 단숨에 글로벌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일반적인 안경의 형태지만, 막상 착용을 했을 때 사용자의 눈에는 선명한 3D 영상이 떠오른다. 레티널의 기술인 핀미러와 핀틸트가 적용된 광학렌즈 덕분이다. 레티널은 이 기술을 통해 2020년 이미 광학계의 난제였던 세로 시야각을 기존 23도에서 40도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이후 유리 재질의 소재를 플라스틱으로 바꿔 획기적으로 단가를 낮추면서도 경량화까지 이뤄냈다. 독자적인 기술에 더해 소재 혁신까지 이뤄내며, 레티널은 올해 100억원이라는 매출 목표를 설정했다.

지난 CES2023에서 레티널 부스는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사진=레티널)
CEC2023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레티널의 AR글래스 시제품 '케플라'. (사진=레티널)

Q CES2023을 통해 선보인 케플러에 적용된 광학렌즈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김_타사 제품은 말은 AR글래스라고 하지만 렌즈 두께가 25mm나 된다거나 실제로는 스마트 워치보다 작은 화면 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에 비해 저희 제품은 저전력으로 오래 사용하면서도 고화질의 큰 화면을 일반 안경과 비슷한 사이즈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에요. 또 가볍고,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죠. 압도적인 경쟁력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양산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이고요.

Q AR글래스에 적용되는 레티널 광학렌즈 기술의 핵심은 ‘핀미러’ ‘핀틸트’라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기술인가요?

김_ 증강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가상과 실제를 같이 보여줘야 된다는 겁니다. 일반 유리는 물체가 비춰지기도 하면서 그 너머가 보이기도 하잖아요. 빛이 반은 반사가 되고 반은 투과되기 때문이죠. 그 현상을 이용해 소재를 가공하면 가상과 실제가 합쳐지게 되는 거예요. 다시 말해 동공 크기보다 작은 구멍 크기의 거울을 장착하고 여기에 영상을 쏘게 되면 마치 속눈썹이 눈에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투명하게 느껴지며 가상과 실제가 합쳐 보이게 되는 거죠. 이것이 핀미러 기술이예요. 증강현실을 구현하는 여러 기술이 있지만, 핀미러 기술은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죠. 이처럼 독자적인 제조 공법을 적용해 만든 렌즈로 경쟁력을 확보했고 다음 문제는 양산성을 올리는 거였어요. 그러면서도 사용성도 높이고 기능적으로 더 넓은 화면을 구현해야 한다는 이슈가 있었죠. 이는 플라스틱으로 소재를 변경하고 렌즈 안에 굉장히 큰 거울을 가상으로 집어 넣은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해결했어요. 덕분에 전력 소비는 최소화하면서 빛을 모아 크고 깨끗한 화면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죠. 이것이 핀틸트 기술이예요. 다시 말해 핀미러 기술은 가상과 실제를 같이 보여주는 것이고, 핀틸트 기술은 작은 렌즈로도 빛을 잘 모아서 눈 앞에 큰 화면이 떠오를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거예요.

Q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경험한 바늘구멍 사진기, 반사경과 비슷한 방식을 작은 렌즈에 압축해서 담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김_(웃음) 맞습니다.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군요.

안양에 위치한 레티널 본사 쇼룸.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레티널)
레티널은 AR글래스 디바이스가 아닌 그에 적용되는 광학렌즈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촘촘한 점이 각인된 것처럼 보이는 렌즈는 레티널의 핀미러 기술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사진=테크42)


독자적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양산 시스템 개발도 완료

Q 메타 오큘러스 퀘스트나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또 중국계 기업인 엔리얼 등 역시 VR글래스에 들어가는 저마다의 렌즈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데요. 그들 사이에서 레티널이 갖는 경쟁력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가장 첫 번째는 당연히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죠. 다른 업체들 같은 경우는  버드배스, 프리즘 타입 등 저마다의 자체 기술을 적용하고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렌즈 두께가 너무 두껍다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문제는 사진으로 보면 그렇듯 해보이지만 실제 착용했을 때 바로 알 수 있게 되죠.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저희 기술의 장점을 꾸준히 알리고 제시하는 노력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글로벌 영업에 있어 AR글래스 관련 사업을 한다고 알려진 대부분의 기업들과 비밀 유지 계약을 맺고 저희 제품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어쩌면 어느 빅테크에서 선보이는 AR글래스에 저희 렌즈가 적용돼 있을 수도 있겠죠(웃음). 또 기술력을 바탕으로 영업 전략과 더불어 고객사의 니즈에 맞춰 지속적으로 개량하고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확보돼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어요. 경쟁사는 광학 인력이 많아야 3~4명이지만 저희는 광학 모듈만을 연구하는 분들이 10명 이상 계시죠.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전문 인력을 늘려 나가며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려고 해요.

Q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앞서 언급하신 것처럼 AR글래스가 상용화되며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하는 시기를 고려하면 물량을 소화할 제조 역량도 중요할 듯 한데요.

김_맞습니다. 그에 대한 준비도 물론 하고 있죠. 광학 모듈 전문가가 10명 이상이라면 양산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사실 더 많습니다(웃음). 국내 대기업 등에서 수십년 동안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 모듈이나 디스플레이 분야 양산을 담당하셨던 베테랑들도 많으세요. 그런 분들이 저희 양산 시스템의 시작과 끝을 구축하고 계시고, 그런 역량을 바탕으로 양산 장비도 꾸준히 개발해 왔어요. 현재 저희 3층 전체가 클린룸 라인을 비롯해 저희 제품의 시작부터 완성품까지 제조 공정을 갖춰 놓은 공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는 어느 곳이든 생산 라인을 구축할 수 있도록 기본 장비 세팅과 시스템을 모두 마련해 놨습니다. 그때가 되면 복사해 붙여넣기를 하는 방식으로 양산 시설을 늘려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돼 있죠.

2016년 창업한 레티널은 2017년 시제품을 선보인 후 2022년 양산을 통해 20억의 첫 매출을 기록했다. (사진=테크42)


Q 현재는 광학렌즈 기술 개발과 양산에만 집중하고 계시는 듯한데, 더 나아가 CES2023에서 선보인 케플라와 같이 자체적인 AR글래스 개발도 염두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김_AR글래스 상용화가 본격화되면 당연히 그 시장은 급속도로 커질 거고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여러 흥미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겠죠.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준비는 저희의 전문 분야인 광학렌즈에 해당되는 것이고, AR글래스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나 플랫폼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현재 저희 고객사와 경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거든요(웃음). 대신 저희 사업 영역에 확실하게 집중할 계획입니다. 사실 현재 협의 중인 고객사가 단지 AR글래스 뿐 아니라 IT 분야 전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분야, 하드웨어 분야, 플랫폼 분야 등 다양하죠. 저희로서는 각각의 고객사가 원하는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마련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챗GPT가 등장하며 많은 기업들이 이와 연계한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고, 이런 상황은 레티널이 생각하는 방향성과 맞아떨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전망하시는 타임라인도 상당히 줄어들 듯 한데요?

김_ 맞습니다. 챗GPT는 저희가 항상 고민하던 부분을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저희 뿐 아니라 저희 고객사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고요. AR글래스는 두 손을 자유롭게 하면서 눈 앞의 화면을 통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에 가까운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에 적용된 터치 방식 등은 적합한 인터페이스가 아니었죠. 뉴럴 링크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나오는 제스처 인식 등도 언급되지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음성인식까지 되는 생성형 AI 테크가 적용될 경우 AR글래스의 사용성을 극단적으로 높여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봐요. 당장은 사무실 업무 환경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일상의 변화도 이끌어 내겠죠. 음성만으로 눈 앞의 증강현실을 조정할 수 있다면 영화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보여준 방식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는 날이 곧 오게 될 거라고 봅니다.

[인터뷰] -2편- 김재혁 레티널 대표 “몇 년 안에 열릴 AR글래스의 B2C 시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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