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처럼 죽음은 세상에 태어난 생명이 반드시 겪게 되는 삶의 마지막 과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며 떠올리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필연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살아가며 거치는 네 가지 큰 의식,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하나에 자리하며 망자를 애도하고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과정을 거친다.
시대에 따라 방식과 절차는 변해왔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장례는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일종의 터부처럼, 본인 혹은 가족 중 한 사람의 죽음이 임박하기 전까지 그 과정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례는 막상 일이 닥친 상황에서 허둥지둥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슬픔에 빠져 경황이 없는 유족들을 상대로 불투명한 비용을 청구하는 상조 업계의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사리분별이 빠른 이라 해도 황망한 상황에 직면한 유족의 입장이 되면 일일이 비용을 따지는 것 조차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문제 제기 없이 비용을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이유로, 상조 업계의 정보 비대칭성과 불편한 관행은 꽤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하지만 최근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 소비자와 검증된 상조회사를 바로 연결해 상조 서비스에 투명성과 신뢰도를 더하는 시도를 하는 스타트업, 고이장례연구소가 주목받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창업자인 송슬옹 대표의 나이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청년, 일반적인 경우 상조 업계의 문제를 접하기에는 이른 세대의 그가 고이장례연구소를 창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의 인터뷰는 그런 질문으로 시작됐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 상조 산업의 문제 해결에 팔 걷은 이유는?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송슬옹 고이장례연구소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벤처경영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장례지도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 시절부터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찌감치 장례 문화를 접하는 경험을 했다. 어린 시절 그를 키워 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유족으로서 경험한 슬픔도 그가 상조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급기야 장례지도사 자격까지 취득하며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는 그에게 어머니는 ‘행정고시’를 권하기도 했지만, 이미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나름 주관이 뚜렷한 편이예요. 제가 만족하는 일을 해야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 면에서 장례지도사는 유족들이 고인을 잘 모시고 마음을 추슬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그런 경험이 고이장례연구소 창업으로 이어졌고요. 어쩌면 창업 이전의 과정은 제가 어떤 업을 어떤 상황에서 할 때 가장 만족스러울지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죠.”
사람 좋은 웃음이 인상적인 송 대표는 천성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 큰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 그의 경험은 지난 시간 속에 켜켜이 녹아 있었다. 대학 시절 자영업자를 컨설팅해 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 였다. 군대 제대 이후 학점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었지만, F 학점을 불사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진 작은 점포의 컨설팅 프로젝트의 팀장을 자청해 간판부터 메뉴판 교체, 원가 분석까지 지원했다. 경제학과 벤처경영학이라는 전공을 십분 활용해 성공 사례를 만들었고, 여기서 얻은 만족감과 성취감은 이후 그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이후 스타트업은 그의 목표가 됐다.
“누군가를 돕는 다는 것, 그리고 실제 내 손으로 뭔가를 바꿔 성공 시키는 과정이 너무 만족스럽고 신이 났어요. 그 두 가지가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였던 거죠. 하지만 실전 경험 없이 창업을 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컸고, 스타트업에 취업해 경험을 쌓기로 했죠.”
총 3년의 기간 동안 그는 화학 비료 중심의 시장에 혁신을 시도하는 유기농 비료 개발 스타트업과 취업 컨설팅 스타트업에 몸담으며 온라인 마케팅과 물류, 재무 등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당시를 떠올린 송 대표는 “전형적인 스타트업과는 다른 유형의 비즈니스를 경험해 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말을 이어갔다.
“두 곳의 스타트업 경험을 하면서 투자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사업화 검증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배웠어요. 그러면서 자금이 원활하게 흐르면서 빨리 성장할 수있는 방식을 고민했고, 거기서 얻은 결론을 고이장례연구소에 적용했죠.”
상조 업계의 문제 해결, 데이터 구축과 자동화로 혁신한다
스타트업으로서 드문 분야에 도전한 고이장례연구소는 창업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창업 첫해 카카오벤처스로부터 4억원의 시드 투자를 유치한 이후 정부지원사업과 공모전을 통해 약 13억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했다. 초기 스타트업으로서 적지 않은 사업 자금을 확보한 셈이다.
“상조 업계의 오래된 문제를 풀어가는 저희 솔루션과 비전이 각 투자사, 정부기관 담당자 분들의 공감을 얻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PMF(시장적합성)을 찾아가면서 트래픽 확보에 주력하고 있어요. 저희 타깃은 이미 상조회사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이죠. 현재는 약 1만명의 고객 분드이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있어요. 별다른 광고나 마케팅 없이 검색 등 오가닉(자연유입)으로 그 정도의 고객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장례에 대한 정보를 찾는 분들이 많다는 의미죠.”
송 대표가 꼽은 상조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불투명한 관행이다. 공급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소비자에게 올바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일종의 독점적인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고이장례연구소는 장례절차를 비롯해 사후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 장례 가이드북을 제작해 콘텐츠로 신뢰도를 높이고, 전국의 장례식과 장지 정보를 가공해 데이터화한 후 최적화된 추천과 정확한 비용까지 자동으로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바로 ‘맞춤형 견적 서비스’다. 그 외에도 고이장례연구소는 여러 장례 업체들의 견적을 받아 보고 선택할 수 있는 ‘역경매 매칭 서비스’ 등을 제시하며 투명한 장례 서비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역경매 매칭 서비스는 이를 테면 이사 서비스 시장에서 먼저 적용된 방식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워요. 고객이 견적을 내기 위해 몇 가지 자신의 상황에 맞는 항목을 선택하고 저희와 협력하는 각 파트너사에서 저마다의 견적을 제안하는 방식이죠. 이후 고객은 여러 견적을 장례지도사의 프로필과 함께 검토하고, 상담을 통해 확정하는 방식이예요. 그 과정에서 저희는 일정 부분 수수료를 받는 수익화를 시도하고 있죠.”
이 과정에서 고이장례연구소가 집중한 것은 투명성이다. 기존 장례 서비스는 갑작스럽게 상을 당한 고객에게 각각의 세부 항목이 아닌 통상적인 전체 비용을 제시하는데, 이 경우 사용하지도 않은 품목의 비용까지 관행이라는 이유로 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고이장례연구소는 ‘품목별 정찰제’를 도입, 각 항목 별 적정 비용을 안내하고 미사용 품목에 대한 비용을 100% 현금공제 받는 방식을 적용했다. 또 반드시 서비스를 이용해 본 고객만이 후기를 작성할 수 있게 해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했다.
“상조 업계는 이름난 브랜드의 대형 상조회사와 중소규모 상조사들로 구성돼 있어요. 대형 상조회사가 60%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그 나머지를 중소 상조사들이 자리하고 있어요. 문제는 대형 상조회사의 사업 방식이예요. 적잖은 비율로 50%의 수수료만 받고 도급 방식으로 중소 상조사에 일을 맡기죠. 결국 하청을 받은 중소 상조사는 다시 개별 장례지도사 분들께 일을 맡기며 마진을 남기고요. 그렇게 되면 고객들은 적잖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낮은 품질의 서비스를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에 저희는 여러 단계에 걸치며 마진을 남기는 구조를 바꿔 장례지도사와 유족들을 직접 연결해 주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고객들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품질의 상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장례지도사 분들 역시 적정한 수익을 확보하면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 거죠.”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사람, 그리고 진정성
기존 시장의 문제를 기술로 혁신한다는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을 제대로 적용하고 있는 고이장례연구소지만, 송 대표는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사람, 그리고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창업 이전 장례지도사로서 경험한 첫 고객의 장례를 도우며 깨달은 원칙”이라며 지난 이야기를 털어 놨다.
“고이장례연구소 창업을 결심하고 반년 정도 장례지도사로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네이버 지식인과 블로그를 통해 장례 절차와 정보를 안내하는 시도를 했어요. 그때 한 고객이 문의를 주셨고 그렇게 제 첫 고객이 되셨죠. 3일 간의 장례를 지원하며 얻은 게 너무 많았어요. 당시 저 역시 서울의 화장시설은 처음 경험했는데, 규모나 분위기에 압도되는 부분도 있었죠. 고객 아버님의 장례였고, 첫 고객이었던 만큼 정말 제 가족과 같이 장례를 치러드렸어요. 결국 마지막에 화장시설에 관이 들어가는 순간 어머님께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우셨고, 저도 그 감정이 전이돼 통곡을 하게 됐어요. 나중에는 상주님께서 ‘그만큼 했으면 쉬셔도 된다’며 저를 위로할 지경이었죠.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가족 분들께서는 한 분씩 제게 오셔서 손을 잡아 주시며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해 주셨고요. 명함도, 홈페이지도 없는 상태에서 제게 장례를 맡겨주셨고 저는 무조건 고객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던 경험이었고, 그때 느꼈던 압도적인 만족감은 지금도 생생해요. 슬픔에 처한 이들을 위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해냈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어요. 그때 이 일을 평생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죠.”
기술 보다는 사람이라는 원칙을 깨달은 경험은 고이장례연구소를 창업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초기 서비스를 구축할 당시 투명성에 집착한 송 대표는 고객이 직접 선택하고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초기 시도는 이렇다할 고객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송 대표는 “시행 착오를 통해 기술보다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초기 서비스 모델은 알고리즘에 기반에 정말 기술적인 비교 자동화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는데, 잘 안됐어요. 당시 저희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기도 했고, 장례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고객들이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간과했죠. 그런 상황에서 고객들은 차라리 ‘저희만 믿으면 된다’는 식의 접근이 더 마음이 편한 거예요. 이후 뒷 단에서는 기술이 적용되지만, 고객들을 상대하는 부분에서는 직접 전화통화를 하고, 신뢰를 구축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고이장례연구소는 그 사명과 같이 새로운 유형의 장례 서비스를 구축하며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쌓아간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목표는 추천 서비스의 개인화와 고도화다. 또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상조 버티컬 플랫폼을 구축이라는 비전을 세우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고객의 삶을 아카이브해 상조 산업 특유의 단절성을 극복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인터뷰 말미, 모든 것을 걸었다는 송 대표의 말에 다시 한 번 진성성이 느껴졌다.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고객이 만족하면 재구매하거나 다른 고객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은 상조 산업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어요. 상을 당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고 평소에는 의식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이상하게 인식되고 있으니 엄청 단절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제는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령화가 지속되기도 하고, 슬픔 대신 고인과 함께한 생전 기억을 공유하며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장례도 생겨나고 있고요. 그럴 때 개인의 삶을 아카이빙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모님과 함께한 영상, 생전의 통화 녹음 등을 모으고 활용하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상조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상조 산업에 혁신을 만들어 가는데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