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발표된 대법원 법원 통계 월보의 누적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파산, 법인회생, 개인회생 사건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올해 역시 크게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렇듯 회생이나 파산 사건이 늘어나면서 부각되는 법률 시장의 문제점은 아직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법률 사무소에서 15년간 근무하며 4000건이 넘는 개인회생·파산 사건을 진행해 온 이종만 한국법률데이터 대표는 바로 여기서 창업의 아이템을 발견했다. 2022년 한국법률데이터를 설립 후 이 대표가 우선 집중한 것은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법률 시장의 서류 발급과 취합 과정을 자동화하는 것이었다.
‘우리민원’이라 명명된 서류발급 자동화 서비스는 법률 사무소에 파산·회생 신청을 한 개인의 동의를 받아 대행하는 방식으로 부채증명서 발급을 비롯해 금융내역, 재산내역, 채무내역 등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수많은 서류 발급을 하나의 사이트에서 자동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큰 페인포인트를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비즈니스의 가능성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바로 서류 발급 자동화 서비스를 통해 쌓이기 시작한 데이터였다. AI 기술을 활용해 부실채권 데이터를 분석하고 용도에 맞게 가공을 할 경우 그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대안신용평가 모델 등에 적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과감한 시도로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고 있는 한국법률데이터의 향후 계획들을 이종만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서류발급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니, 데이터가 보였다
“오래도록 법률 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파산과 회생 절차 과정에서 기본적인 서류 발급의 어려움에 대해 주목을 했습니다. 자동화 서비스를 만들면 법률 사무소의 니즈가 확실히 있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창업 초기에는 ‘우리민원’ 서비스를 선보이며 부채증명서 발급을 시작으로 현재 법률 시장에서 발급되는 서류의 80% 정도를 자동화했습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개인 회생과 파산을 법원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소득, 재산, 채무발생원인과 관련된 서류를 비롯해 금융거래내역서 등 약 68종 이상의 서류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는 개인이 하기는 쉽지 않고 보통은 서류 발급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까지 기존 서류 발급 대행 서비스 시장은 오프라인을 통해 직접 은행이나 공공 기관을 방문해 서류를 발급 받는 방식으로 진행이 됐다. 온라인 발급이 가능한 서류도 있지만, 제한적이고 종류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 결과적으로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서류 발급 건은 시간적인 한계가 존재하던 상황이었다. 시간의 가성비, 즉 ‘시성비’를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우리민원’은 서비스 론칭 1년 만에 법률 시장의 서류 발급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4월경 우리민원 초기 모델을 선보이며 기존 서면 발급 의뢰신청서의 온라인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비스 고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업무 자동화를 위한 문서자동생성시스템을 개발, 지난해 8월에 특허를 출원하고 현재 등록까지 마친 상태 입니다. 또 올해 4월에는 채무분석알고리즘의 특허출원을 준비하고 있고 오는 11월까지 Ai부실채권분석을 특허출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법률데이터가 집중한 것은 데이터다. 데이터 3법이 개정되면서 개인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문이 열린 상황이었고, ‘우리민원’을 통해 입수된 데이터는 대안신용평가 모델에 적용될 경우 그 활용성이 월등히 높아진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 대표는 “현재는 파산에 이르게 된 금융 거래 로우 데이터를 활용해 부실 채권을 분석하고 다시 전처리와 정제 과정을 거치는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대안신용평가시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데이터의 선별, 데이터의 정제 기술 , 금융거래내역의 수집 등이 중요하죠. 이를 위해 저희는 실제 파산에 이르게 된 금융거래내역을 활용했어요. 부실채권 분석을 위한 일관되고 변동성이 적은 금융거래내역의 수집이 가능해 지면, 채무분석을 통한 데이터의 정제로 Ai 딥러닝에 필요한 데이터 전처리를 할 수 있게 되거든요. 이 과정에서 누락된 데이터 또한 표준 편차 분석을 통해 이상치를 제공하고 시계열 분석을 통해 적합한 형태로 변환합니다. 또 데이터 수집 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 문제를 도산 법률시장에 서류발급으로 해결하면서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었죠.”
이제는 리걸테크 데이터 솔루션이다
우리민원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파이프 라인을 확보한 상황에서 한국법률데이터가 집중하는 것은 데이터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리걸테크 데이터 솔루션’이다. 크게 보면 우리민원 역시 이 솔루션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 가공, 제공 등의 과정에서 한국법률데이터는 각각의 특허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저희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양한 수익이 창출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선 우리민원에서 자동으로 문서를 발급하는 서비스를 통해 수익이 발생합니다. 또 그 데이터를 정제·가공해서 신용평가사에 제공할 때도 수익이 발생하죠. 그 외에 법률 사무소에서 법원에 제출할 자료 데이터를 가공해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수익이 발생합니다. 즉 데이터 수집과 전처리, 제공 등 각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거죠.”
현재 ‘우리민원’을 이용하는 법률 사무소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법률데이터의 분석 결과 우리민원을 사용 후 법률 사무소의 업무 속도는 기존 대비 약 20% 이상 향상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류 발급이 진행되는 과정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고 클라우드를 통해 PDF파일이 실시간 제공되고 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민원을 통해 리걸테크 데이터 솔루션의 1단계는 완성돼 가고 있다”며 데이터 정제 고도화를 통한 2단계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오픈뱅킹을 비롯한 마이데이터 사업이다.
“지난달에 저희는 오픈뱅킹과 관련해 금융결제원에서 이용 적합성 승인을 받아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금융 거래 내역을 온라인으로 발급하는 정점에 오픈뱅킹이 있기 때문이죠. 오픈뱅킹을 이용하게 되면 개인의 금융 거래 내역을 온라인으로 빠르게 수집할 수 있게 되고 데이터 가공이 훨씬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후에는 마이데이터 사업자를 내년 말쯤 신청하는 과정을 밟을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픈뱅킹으로도 한계가 있는 대안신용평가사에 제공하는 데이터가 더욱 정밀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 대표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한국법률데이터의 가장 큰 강점은 초기부터 ‘우리민원’ 서비스를 통해 매출이 확보되는 캐시카우를 만든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이미 자생력을 확보한 상태로 데이터 비즈니스의 파이를 키워가는 셈이다. 덕분에 이제까지 엔젤투자 만으로도 규모를 키워갈 수 있었다고. 이 대표는 “기업가치를 높인 이후 본격적인 투자 유치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서비스를 고도화해 가면서 개발 비용을 비롯해 성장 단계 별 예상되는 비용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으로서 당연히 일정 시점 이후에는 투자 유치를 고려하고 있고 문은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기업 가치를 올리는 것에 더 집중하는 중이죠. 특히 우리나라와 법률 체계가 비슷한 일본 진출을 계획 중이라 올 하반기 정도에 본격적으로 투자 유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민원 론칭 이후 매출 증가 추이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법률데이터는 창업 이후 매 분기 2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된 ‘리컬테크 데이터 솔루션’의 완성과 초기부터 내재화된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리걸테크 분야에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계획이다. 그러한 목표에 맞춰 올해 한국법률데이터가 추진하는 전략 중 하나가 전국적인 영업망 구축이다. 인터뷰 말미, 이 대표는 지난 과정들을 돌이키며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전략적인 영업 전략과 정교한 비즈니스 수익 구조 확립”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바로 한국법률데이터가 취한 방식이다.
“법률 시장은 이제까지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늦었습니다. 아무래도 법과 규정을 다루는 분야이니 서류 발급을 자동화하는 것 조차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며 진행해야 했고요.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세운 전략은 각 지역 법원을 중심으로 지사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각 지역 법률 시장이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서류 발급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을 통해 고객 풀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죠. 저희 서비스가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