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컴퓨터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다트머스 대학에서 존 맥케시에 의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말이 최초로 언급된 이후, AI 기술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정체와 급진적인 발전을 몇 차례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1974년부터 1993년까지 두 차례 이어진 ‘AI Winter’ 이후 1997년 IBM이 선보인 ‘딥 블루(Deep Blue)’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우승을 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IBM은 이후 2011년 왓슨(Watson)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퀴즈쇼 우승이라는 이벤트를 선보였고, 2016년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가 우리나라 이세돌 9단을 바둑으로 이기며 단 20년 만에 급진적인 발전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22년 오픈AI가 개발한 챗GPT의 등장은 이전 모든 성과를 넘어서며 바야흐로 AX(AI 전환) 시대의 기폭제가 됐다. 몇몇 전문가들은 챗GPT로 시작된 일련의 변화를 이른바 ‘AI 쓰나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전 세계 테크 시장에 충격파를 던지며 산업 전반의 AX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 유럽이 축을 이루는 AI 헤게모니 경쟁에서 과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지난 12일 국회에서 ‘AX 시대, AI 강국 도약을 말한다’를 주제로 개최된 ‘디지털 인사이트 2024 정책간담회’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
한국 AI 경쟁력 현주소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의 주최, 디지털 투데이 주관으로 개최된 이날 정책 토론회는 송세경 한국생성AI파운데이션 회장이 ‘한국 AI 경쟁력 현주소와 발전방향’을 주제로 첫 발제를 맡았다.
송 회장은 챗GPT 등장과 함께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을 ‘인공지능 혁명’으로 규정하고 최근 생성형 AI와 함께 가속 컴퓨팅의 시대에 접어들며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AI 반도체, 이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는 AI 로봇 휴머노이드 상용화 전망, 디퓨전 프랜스포머 기술로 등장한 동영상 생성 AI 소라(Sora)의 사례를 언급했다.
이어 한국의 AI 경쟁력과 관련해 미중 양강 체제에서 글로벌 AI 지수(2023년 기준) 부문 62개국 중 6위를 기록하는 자료를 근거로 “알고리즘 기술과 정부 정책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선전하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이 외에도 송 회장은 한국이 AI 준비 지수 상위 10개국 중 7위를 기록했다는 점,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에 비해 미흡하지만 그 발전 속도만큼은 가장 빠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우수한 인재를 기반으로 빠르게 선진국과 격차를 줄여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송 회장은 “다만 문제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중국은 하드웨어 중심의 글로벌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대만은 미국과 연계돼 있고요. 반면 우리나라는 AI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습니다. 핵심 운영자가 없이 모두가 참여자인 상황이죠. 운동장이 없는데 어떻게 선수를 키울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AI를 많이 쓰는 것 같지만 조사에 따르면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의 영역에서 생성형 AI 활용국가 상위에 한국은 들어가 있지도 않을 정도로 후순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회장은 파라미터가 높을수록 인공지능의 수준이 인간의 능력에 근접해진다는 연구 결과들을 사례로 들며 인공지능 시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미국 중심으로 AI 산업이 수직계열화 돼 가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한국의 저력이 있는 만큼 아직 반전의 기회는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왔습니다. 놓친 것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습니다. 주목할 것은 공급망입니다. 바로 AI 반도체 기술이죠. 현재 엔비디아는 이를 기반으로 이미 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AI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미국과 대만에 속해 있습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KT 정도죠.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법을 만들고 있고, EU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빅테크가 못들어 오게하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죠. 규모 면에서 열세인 한국이 거인과 싸울 방법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다행히 한국은 스마트폰, 로보틱스, 모빌리티 분야의 선진국입니다. 산업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넥스트 엔비디아가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FTA 경제 영토와 한류 등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하고 시각을 해외로 돌린다면 가능할 겁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한국 인공지능 정책 방향은?
송 회장에 이어 이날 김경만 과기정통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은 ‘2024년 인공지능 정책 방향’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 정책관은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AI 일상화 및 산업 고도화 계획을 바탕으로 AI, 데이터, 클라우드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을 진행해 왔다”고 운을 뗐다.
“원천 기술, 데이터 컴퓨팅에 대한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 인프라를 구축한 다음 정부를 비롯해 산업,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인공지능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느냐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정책을 펼쳐 왔습니다. 지난 5월 진행된 AI 서울 정상회의가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죠. 이를 통해 각국의 정상들은 인공지능이 국가와 사회 전체에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안전이라는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김 정책관은 한국이 AI 정상회의 주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몇 가지로 짚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LLM(초거대언어모델)을 만들었다는 점, 여러 제조 산업에서 글로벌 1등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 독자적인 디지털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 등이다. “한국은 독특한 나라”라고 언급한 김 정책관은 “여러가지 AI 정책이 진행 중이고 지표를 봤을 때 상당히 많은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의미를 두는 것은 실제 미국과 중국에 이어 비등한 수준의 3위권 그룹에 한국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열심히 하면 글로벌 3위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보고 있죠. 정부의 정책 역시 AI 글로벌 3위를 목표로 진행 중입니다. 특히 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등장하고 나서 정책적인 변화가 커지고 있죠. 그중 하나가 앞서 송 회장님도 언급한 인프라 확보입니다. 인공지능 산업은 많은 자원을 쓰고 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컴퓨팅 자원과 AI 반도체입니다. 이 부분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이고 힘든 과제죠. 한편으로 과연 AI 반도체만이 살 길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이 자체의 에너지 소모량이 너무 많아 지구를 죽이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정부는 초전력 반도체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어 김 정책관은 글로벌 인공지능 산업 혁명의 상황에서 인프라 구축과 생존에 대한 고민을 넘어 인공지능 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각국에서 수립 중인 인공지능 법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선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EU는 인공지능법을 만들고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적합성 심사와 사회적 영향 평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AI 기술을 적용한 우리나라 제품이 유럽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기준을 만족해야 되겠죠. 우리나라 법이 그에 상응하는 기준으로 맞춰진다면 유럽 시장은 너무나 편하게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규제 수준도 정부의 고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번 정기 국회 때 인공지능 법이 통과되길 희망합니다.”
이 외에도 김 정책관은 파운데이션 모델 등장 이후 원천 데이터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천 데이터 거래 활성화 등 정부의 정책적 대응, 데이터 안전 구역에 대한 고민을 비롯해 전 산업의 클라우드 전환 가속화 등의 진행 상황, 하반기 예정된 AI 안전연구소 출범을 언급하며 정부의 대응을 설명하기도 했다.
GPT 모먼트 이후 AI 가치 창출은 지속될 것
이날의 마지막 순서는 ‘AI 트렌드와 국내 AI 스타트업의 도전 과제’를 주제로 한 권순일 업스테이지 부사장의 발표였다. 권 부사장은 “GPT 모먼트가 오며 AI의 가치 창출은 다시금 연속성을 가져가기 시작했고, 향후 인공지능 겨울이 급격하게 올 가능성은 적다”고 강조며 세 가지 환경적인 상황을 언급했다.
“첫 번째는 여전히 비싸긴 하지만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프로세싱 비용이나 스토리지와 같은 하드웨어 비용에서 지속적인 비용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데이터가 생성 및 저장되며 비구조적 데이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는 사업 환경에서 돈, 즉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의도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시장에서 나오는 핵심 질문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이고 학계 역시도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인지하며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 권 부사장은 “GPT 모먼트가 시작되며 빅 모델의 등장이 이론적 가능성을 넘어 실질적인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로 권 부사장이 꼽은 첫 번째 이유는 LLM이 오픈형, 폐쇄형을 불문하고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며 멀티 태스킹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일반 사용자들에게도 챗GPT와 같이 익숙한 인터페이스로 제공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꼽았다. 마지막으로는 성능이다.
“아무리 멀티 태스킹이 가능해지고 인터페이스가 편해졌다고 해도 성능이 나쁘면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AI는 적어도 특정 영역에서는 사람과 유사하거나 그 보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로 인해 이 세 가지가 지속적으로 발전했을 때 가능성에 천장이 없다는 공감대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형성됐죠."
이어 권 부사장은 AI 서비스를 개발할 때 필요한 요소, LLM을 활용하는 방식과 서비스, 향후 청사진을 언급하며 스타트업의 LLM 접근법과 관련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업스테이지가 진행하고 있는 방식을 사례로 설명하기도 했다.
발표 말미 권 부사장은 “이 기회의 판에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누가 이길지는 알 수 없다”며 전폭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으로 결과를 알 수 없는 도전에 나서고 있는 AI 스타트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인프라 구축 등 이미 너무 잘 지원해 주고 계시지만 이것이 일관성 있게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또 트렌디한 것을 선호하며 인하우스만 고집하는 대기업의 방식도 변화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AI 트렌드가 죽지 않을 거라는 것은 확실해졌지만, 사실 어떤 전술이나 전략으로 성공할 지는 세계 누구도 모르는 것이 현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의 방향을 무조건 따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역시도 계속 바뀌거든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도전과 시도를 많이 해야 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들이) 그런 기회를 많이 얻기 위해서는 정부나 대기업들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스타트업들도 당연히 그 환경에서 해야 될 것을 열심히 하는 문화, 생태계가 구성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기회를 주시고 환경을 주시면 저희는 거기에서 안주하거나 예측하지 않고 도전하는 태도를 계속 가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