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고급 스포츠로 분류됐던 골프는 최근 몇 년 사이 꽤 대중화되며 적잖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스크린 골프 연습장은 이제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여가 문화가 다양해진 탓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골프 대중화를 견인한 것은 기술의 발전도 한몫한 셈이다.
골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지금도 그에 적용된 기술은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다.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을 넘어 제대로 배우고 좀 더 실력을 높이고 싶은 니즈가 반영되는 것이다. 크리에이츠는 이렇듯 대중의 니즈를 반영해 골프에 신기술을 접목, 혁신을 거듭하며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골프 시뮬레이터 전문 기업이다.
2009년 설립된 크리에이츠는 2010년부터 중국과 일본에 적외선 평면 골프 센서 수출을 시작으로 스크린 골프용 고속카메라 센서 개발에 성공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모두 내재화한 기술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2016년 정식으로 미국에 법인을 설립한 이후 선보인 ‘유니코(UNEEKOR)’ 브랜드는 현재 트랙맨, 포어사이트와 함께 북미 3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크리에이츠가 보유한 골프공의 딤플로만 회전을 읽을 수 있는 이미지프로세싱 기술 특허는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 북미에서는 1위 기업인 포어사이트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지속적인 매출 성장을 이어온 크리에이츠가 새롭게 주목한 것은 바로 ‘AI(인공지능)’ 기술의 접목이다. 크리에이츠는 지난 2022년부터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지속해 AI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이를 주도한 것은 네이버에서 스마트렌즈 개발을 담당했던 김종택 크리에이츠 AI 본부장이다. 이에 테크42는 김종택 본장을 만나 AI 기술 개발을 통해 크리에이츠가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길과 골프 산업에서 이어질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AI 기술을 접목해 스윙 분석, ‘AI 트레이너’ 선보여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골프전시회 ‘2024 PGA쇼’에서 크리에이츠는 미국 법인 브랜드인 유니코의 이름으로 ‘AI Trainer(AI 트레이너)’와 ‘AI SwingTracer(AI 스윙트레이서)’ 베타 버전을 선보였다. 당시 현장에서는 단순히 스윙 궤적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과 자세 교정까지 제공하는 신기술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초고속 카메라 기술과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을 통해 개발된 이 AI 트레이너는 머리를 포함해 19개 관절을 AI가 인식하고 스윙 역시 8개 구간으로 나눠 각각의 관절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이와 동시에 전·후면에 배치된 초고속 카메라가 스윙과 실제 골프공의 회전을 분석해 코칭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AI 트레이너를 개발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김종택 본부장이다. 서초동에 위치한 크리에이츠 AI 센터에서 만난 김 본부장은 “AI가 모든 산업의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주목받고 있고, 골프산업도 예외가 아니”라며 “골프 클럽 피팅이나 골프 카트, 골프 중계 등에서도 AI를 이용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하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골프의 여러 분야에서 AI 기술 접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AI 스윙 분석입니다. 골프는 배우기 어려운 운동이고 따라서 프로를 찾아가서 레슨을 받는 시스템이 어느 종목보다도 활성화돼 있습니다. 하지만 레슨 비용이 비싸고 레슨 내용을 잘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서 독학을 하는 골퍼도 있지만, 본인 스윙에 맞지 않는 내용을 따라하다가 오히려 스윙이 망가지기도 하죠. 저희의 ‘AI 스윙 코치’는 그러한 사용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개발하게 됐습니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기존 골프 시뮬레이터는 정확한 볼 데이터와 클럽 데이터 제공에만 집중돼 있었다. 스윙의 결과를 측정하고 보여주는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크리에이츠의 ‘AI 스윙 코치’는 스윙 영상을 AI를 통해 빠르게 분석하고 육안으로 잘 볼 수 없던 문제점을 시각적, 수치적으로 제공하며 프로 선수의 스윙과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사용자가 본인 문제를 스스로 정확히 진단하고 연습 목표를 세울 수 있게 한 것 역시 특징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기술이 김 본부장의 크리에이츠 합류 후 채 1년도 안돼 개발됐다는 사실이다. 김 본장은 스스로 “골프를 매우 좋아하는 골퍼로서 내가 가진 AI 기술력을 골프에 적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네이버에서는 9년 정도 일했어요. 스마트렌즈와 이미지/동영상 검색 서비스에 AI 기술을 도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 AI 기술이 새롭게 각광받는 시기였고 네이버에서도 AI 기술을 빠르게 검색 서비스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스마트렌즈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기존 검색 서비스에도 AI 기술을 도입해 개선시키면서 즐겁게 일했죠. 그러면서 골프에도 AI 기술을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크리에이츠에서도 마침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의기투합하게 된 거죠.”
데이터를 정리하고 체계를 만들다
크리에이츠 합류 이후 김 본부장이 가장 먼저 한일은 사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AI 모델 개발을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크리에이츠에는 그동안 판매된 장비로부터 수집되는 사용자 데이터가 하루 1000만건 이상 쌓이고 있었다. 김 본부장은 “특히 볼 데이터, 클럽 데이터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갖고 있고 자체 제작한 Swing Optix 카메라를 통해 고화질의 스윙 영상도 수집돼 있었다”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이 데이터를 AI 학습에 적합한 형태로 정제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필터링해서 레이블링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우선 진행했습니다. 어떤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용자에게 재미와 실력 향상이라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설계하는 것이 제가 가장 공들인 부분입니다. 기술만을 내세우다 보면 자칫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시장에서는 외면받는 서비스를 만들게 되거든요. 기술과 서비스 기획의 밸런스를 잘 잡고 사용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어요. 저 스스로가 우리 제품을 열렬히 사랑하는 골퍼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가 이 AI 서비스를 얼마나 사용하고 싶은지에 집중하기도 했고요(웃음).”
그렇게 해서 선보인 서비스가 ‘AI Trainer’와 ‘AI SwingTracer’다. AI Trainer는 지난해 10월에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용자의 스윙을 자동으로 8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문제점을 진단해 주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백스윙 탑에서 크로스오버 문제가 있습니다’와 같은 식으로 진단하는데, 이렇게 진단된 항목에 중요도를 반영해 100점 만점 기준으로 스윙 점수를 적용한다. 보통 프로 선수는 90점 이상이 나오고 아마추어 골퍼는 60점에서 90점 사이가 나온다. 이어 올해 6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AI SwingTracer’는 스윙에서 클럽헤드의 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다. 김 본부장은 “골프에서 올바른 스윙궤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백스윙과 다운스윙을 구분하고 스윙 스피드에 따라 컬러와 두께도 차이를 두어 사용자가 쉽게 본인의 스윙궤도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백스윙과 다운스윙 구간 각각에 걸리는 시간도 보여줌으로써 스윙템포를 파악하고 항상 일정한 스윙템포로 연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담으로 이 서비스를 개발한 연구원이 이 기능을 통해서 본인 스윙궤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수정해서, 따로 레슨을 받지 않고도 드라마틱하게 골프 실력이 향상되기도 했죠.”
AI는 하나의 기술일 뿐, 중요한 것은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것
앞서 언급한 ‘2024 PGA쇼’에서 ‘AI Trainer’와 ‘AI SwingTracer’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현장에서는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당장 유료 서비스로 출시해도 될 정도”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 본부장이 선택한 것은 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고도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오는 9월 정식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현재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김 본부장은 크리에이츠가 보유한 데이터의 강점과 기술력을 강조하며 내년 1월 출범할 하이테크 가상 현실 골프 리그인 TGL을 언급했다.
“전통적으로 미국 시장은 온코스 골프가 주도하는 시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오프코스 골프가 점점 더 각광받고 있죠. 온코스 골프는 비교적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데 반해, 오프코스 골프는 접근성이 좋고 가족, 친구들과 가볍게 어울리기에 좋기 때문이예요. 특히 내년에는 TGL이 출범해 오프코스 골프에 대한 붐업이 크게 일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미국 골퍼들 중에는 아직도 골프 시물레이터 자체를 접해 보지 못한 인구도 많거든요. TGL을 통해 골프 시물레이터 시장이 커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골프 AI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
이와 함께 크리에이츠는 사업 분야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테면, 넷플릭스와 같이 개인화된 구독 서비스를 비롯해 국내에서 시도한 QED를 통한 골프 교육 시장 공략 등이다. 김 본부장은 “드라이빙 레인지(driving range, 골프 연습장) 시장을 눈 여겨 보고 있다”며 계획을 설명했다.
“과거 실내 연습장에는 흰 천막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골프 시물레이터 없는 실내 연습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죠. 마찬가지로 실외 드라이빙 레인지에도 골프 시물레이터를 설치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어요. 데이터 기반의 골프 연습에 익숙한 젊은 골퍼들은 실외에서도 정확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나의 스윙 영상을 쉽게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또한 코스 시물레이션 게임이나 미니 게임을 통해서 연습을 더 재미있게 하고 싶은 니즈도 많고요. 이에 저희는 소프트웨어는 ‘AI Trainer’를 필두로 한 AI 기능들과 코스 시물레이션 게임인 ‘GameDay’를 유료 구독제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구독 사용자에게는 새로운 기능과 새로운 코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개인화된 맞춤형 리포트, 연습 드릴, 컨텐츠를 제공할 예정이죠.”
이에 더해 김 본부장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 쉽지 않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온디바이스 AI’ 설계 적용으로 휴대가 가능한 론치모니터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마치 필드에 나갈 때 휴대하는 거리측정기와 같이 누구나 작은 론치모니터를 가지고 필드에서 샷을 할 때마다 볼과 클럽 데이터를 측정하고 스윙을 분석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AI 기술 접목을 통해 크리에이츠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한 그이니 만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듯하다. 인터뷰 말미, 김 본부장은 그렇듯 AI 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를 털어 놓기도 했다.
“AI 기술도 결국 하나의 기술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AI를 통해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활용해 사용자가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에 따라 사업의 성공이 좌우되죠. 특히 골프는 실제로 몸을 써 가며 배우고 즐기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AI를 활용해 어떻게 전달할지가 중요합니다. 우리 눈에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재된 기술 향상에 AI는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네이버 검색을 할 때 검색어를 입력하면 검색 결과가 나오는 경험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검색 품질 향상을 위해서는 AI 기술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과 같죠. 골프 산업에서도 AI는 사용자가 좀 더 재미있고 정확한 골프 경험을 하기 위해 사용될 거예요. 이렇게 제품과 서비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골프 산업의 AI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