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0시대가 확정되며 미국은 물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세계 각국의 상황이 급격이 재편될 전망이다. 미 대선 당시 지지 후보를 달리했던 실리콘밸리 기업들 역시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가장 성공한 것은 단연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며 1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정치자금을 배팅한 일론 머스크다. 정부효율부(DOGE) 장관에 지명된 그는 트럼프 정부 구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향후 엄청난 규제 완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를 지지했던 구글, 메타 등은 좌불안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미국의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에 브렌던 카 현 공화당 소속 FCC 위원이 지명됐기 때문이다. 그는 차기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제를 담은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 보고서’에서 FCC 관련 항목을 집필한 인물로, 해당 보고서는 FCC가 애플과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기술기업들을 직접 규제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물론 규제 완화에 나설 것으로 확실시되는 일론 머스크가 있어 향후 어떤 식으로 빅테크를 다루게 될 진행될 지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실리콘밸리는 빠르게 실용적 태도로 전환하며 이구동성으로 트럼프 2.0시대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실리를 따져볼 때 트럼프 재집권과 함께 이어질 파격적인 규제 완화, 공약으로 내 세운 법인세 인하, AI 등 신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 기대감 때문이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어찌됐든 실리콘밸리는 내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지 창업을 준비하는 한국 예비 창업자 혹은 미국 진출이나 플립(FLIP, 본사 해외이전)을 고려하는 한국 스타트업은 다급해지고 있다.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 측이 강력한 이민정책으로 이민자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 1기 당시를 복기했을 때도 확실한 사실 하나는 트럼프 2.0시대에 미국으로 가려는 이민자 혹은 외국인들의 비자 발급이 굉장히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최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24’에서 만난 주디 장(Judy Chang)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국 비자, 원래부터 창업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날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24’의 첫 세션으로 진행된 ‘실리콘밸리 현장 스토리’는 주디 장(Judy Chang) 변호사가 최수현 삼성전자 미국법인 Head of Platform Intelligence, 김영록 GREE LP Fund 파트너 등과 연사로 참여해 실리콘밸리의 기술과 벤처투자 그리고 해외 진출 트렌드를 전했다. 장 변호사는 이어 조윤민 소풍벤처스 파트너가 모더레이터로 나선 패널토크에서도 이민과 비자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
주디 장 변호사는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인 16세에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 이민 1세대다. 이후 그녀는 토론토 대학 로스쿨을 졸업하고 경험을 쌓기 위해 미국 로펌에 합류했다. 3년을 예정하고 간 것이었지만, 이민법에 관심을 쏟게 돼 정착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미국의 이민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연에 나선 장 변호사는 “현재 미국 이민의 키워드는 단연 ‘트럼프’”라며 “앞으로의 이민 전망이 어떻게 될 것인가, 또 특별히 창업과 취업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일까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운을 뗐다.
“선거 이전에 워싱턴 포스트에서 일론 머스크와 관련된 폭로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F-1 비자로 대학원에 있을 때 이름만 걸어두고 다니지 않았다는 거죠(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예전이라 얼렁뚱땅 넘어갔지만, 지금 같으면 추방 대상이라는 점을 지적했어요. 물론 선거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미국에서 그만큼 체류 신분 유지는 어렵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 외에도 장 변호사는 인스타그램의 공동창업자 마이클 크리거가 “인스타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미국 취업 비자를 받는 것이 더 오래 걸렸다”고 털어 놓은 일화, 줌의 창업자 에릭 위안이 8번이나 미국 비자 발급 퇴짜를 맞은 사실을 언급하며 과거를 떠올렸다.
“제가 막 활동할 시기였던 1999년부터 200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뜨거울 때였습니다. 너무나 재미있는 IT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었죠. 그때 한국 역시도 막 IT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그런 회사들과 다양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미국 사람들이 트럼프 정부를 지지한 이유
“미국 대선에서 출구조사 당시 키워드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가 ‘경제’고 다른 하나가 ‘이민’이었어요. 사실 미국 경제는 지금 호황이예요. 또 여러가지 조사가 있지만 이민자들이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로 인식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민과 경제가 대선 이슈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냐를 보면, 그 원인은 지독한 자본주의 나라인 미국의 빈부격차에 있어요. 나라는 호황이지만, 국민 절반은 삶이 어렵자고 느끼고 있고, 자신들의 경쟁 상대가 되는 이민자들에게 돈을 쓰는 것을 싫어한 거죠.”
장 변호사에 따르면 이들에게 사실 창업자나 취업자들의 비자는 공격의 대상이 아니다. 이 부문은 매년 발행할 수 있는 영주권 카드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안은 직계가족 초청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민자 수다. 이 외에도 난민 등 미국에서 임시 보호 신분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취업 비자가 견제의 대상이 된다. 장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2기 정부는 다시금 바이든 정부가 바꿔놨던 이민정책을 다시금 강경하게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말을 이어갔다.
“트럼프 정부 1기 때 강경한 이민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극우 성향의 반 이민주의자)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요. 아마도 당연히 비자 수속 과정의 인터뷰가 까다로워질 거라 생각해요. 트럼프 1기 때는 심지어 출입국을 막는 경우도 실제 있었죠. 다만 한국과 같이 우호적이고 실제 투자도 만이 하는 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봅니다. 수속이 좀 복잡해지는 수준이 일반적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갑작스레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트럼프 2.0시대, 까다로워지는 미국 취·창업 비자 대응법은?
그럼에도 미국 실리콘밸리는 창업을 꿈꾸는 자, 스타트업들에게는 꿈의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비록 그 절차가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지더라도 꿈을 쫓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정에 불과하다. 주디 장 변호사 역시 “스타트업들에게 실리콘밸리는 어떤 난관을 거쳐서라고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곳”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실리콘밸리는 모든 산업 생태계가 완비돼 있죠. 실제 10억달러 규모 스타트업 중 55%에 해당하는 스타트업이 최소 1명 이상의 이민자가 창업자 혹은 공동창업자 참여했어요. 주목할 점은 이들이 이민 2~3세대가 아니라 1세대라는점이예요. 미국 전체 25%, 실리콘밸리의 50%가 이민자가 만든 스타트업이예요.”
장 변호사에 따르면 이러한 이민자가 창업한 스타트업의 경우 그들에게만 투자하는 VC의 투자 유치와 지원을 확보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이들 VC는 단순 이민자가 아닌 이민 창업자에 집중하는 투자를 결정하며 투자를 넘어 법적 조언이나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비자 발급 지원도 자체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등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실래콘밸리에는 한국계 VC가 증가하고 있어 이들의 투자와 지원에 주목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컴투스, 블라인드 등에 투자한 스톰벤처스,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둔 한국 VC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등이 있다.
이어 장 변호사는 “미국 창업이나 플립을 생각할 경우 반드시 이민 변호사와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고 전제한 후 초기 접근법에 대한 조언을 이어갔다. 장 변호사는 “특히 초기에 ESTA(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의 개인정보 사전등록 시스템)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TA의 체류 기간이 3개월이라고 하지만 남용하면 안됩니다. 실제로 3개월을 머물며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3개월씩 왔다갔다 하면서 미국에 살 수 있다는 것도 아니예요. 미국 이민국에서 말해주진 않지만 사실 이 ESTA를 가지고 체류기간을 1년 중 6개월을 넘기면 안됩니다. 여러 번 왔다갔다 할 일이 있다면 짧게 쪼개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3개월을 꽉 채우게 되면 이민국에서는 ‘이 사람이 출장이라면서 왜 3개월이 필요하지’라고 의문을 가지게 되거든요. 자칫 공항에서 입국이 불허되고 돌려보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정식 비자 발급 역시 꼬이게 되는 거죠.”
이 외에도 ESTA의 경우 모든 외국인에게 20~30분 가량의 심층 질문을 하고 최대 72시간 전부터 사전 조회를 해 위험 인물로 간주될 경우 철저히 배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범죄기록이나 테러지원국 방문 이력이 있을 경우 거의 거절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창업을 한 상태라면 IEP(International Entrepreneur Parole)를 신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오바마 정부 말기에 발표돼 시행되지 않다가 바이든 정부 당시 행정명령에 따라 시행된 것으로 신청 전 5년 이내 미국에 회사를 설립한 상태여야 하고, 10%의 사업체 지분을 보유한 상태로 운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미국 VC로부터 25만달러 이상 투자를 받거나 10만달러 이상 정부 보조금을 받아야 한다. 만일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신생회사가 빠르게 성장해 고용창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사업계획서로 인정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 변호사는 초기 비자와 중기 비자, 영주권을 받는 과정을 언급하면서 “안타깝게도 트럼프 2기 정부는 IEP(창업을 위한 미국 체류 비자)를 없애 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어 장 변호사는 패널토론을 통해서도 “AI 등 미국이 육성에 신경을 쓰는 기술 분야의 창업이나 취업 비자정책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이민이 주 목적이 아닐 경우 창업이나 취업을 위해 홀로 갈 경우는 O-1(특수재능 소유자 대상 비자), 함께 갈 코파운더나 중요 직원이 있을 경우 E-2(투자자 비자) 혹은 L-1(주재원)을 시도해 볼만 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