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며 스타트업들에게 혹독한 시련의 시기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스타트업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등장하는 스타트업은 과거에 비해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플랜까지 마련하며 초기부터 매출을 만들어 내는 등 사업성과 PMF(시장적합도)를 입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프라이머 25기 데모데이 역시 그런 스타트업들의 흥미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는 자리가 됐다.
지난 2010년 1월 국내 최초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시작한 프라이머는 ‘선배 창업가들의 DNA를 후배 창업자들에게 전달하고 복제해 성공을 돕는다’는 기치를 내 걸고 16년째 변함없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 모인 9팀의 발표에 앞서 무대에 나선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데모데이의 주인공은 스타트업 그 자체”라며 “조금 미숙하지만 뭔가를 시도하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마주하는 것이 스타트업 데모데이의 본질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 대표는 이날 발표에 나서는 프라이머 배치 프로그램 25기 소개와 함께 선발을 마친 26기, 오는 6월 진행되는 27기 모집 소식을 알리는 한편, 오는 4월 15일부터 모집이 진행되는 ‘스텔스 창업 멘토링’을 언급하기도 했다. 스텔스 창업 멘토링은 4년 전부터 프라이머에서 정규 배치 프로그램과 별도로 진행해 온 것으로, 직장을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사람을 돕는 AI,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솔루션
이날 데모데이에는 AI 기술 기반 솔루션을 선보이는 스타트업들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싸고 빠르게 영어학습 컨텐츠를 제작해주는 AI’를 표방한 ‘큐파일럿’을 선보인 아드바크 팀은 초기 AI 다리어리 관련 서비스로 시작해 피보팅을 거쳤다.
서울대에서 경영학과 인공지능연합전공을 공부한 박상현 대표를 비롯해 2명의 엔지니어 공동창업자들이 모여 창업한 아드바크는 실제 영어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는 문법 지식을 내재화한 AI모델을 자체적으로 훈련시켜 영어 교육에 특화된 콘텐츠 제작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큐파일럿(qpilot)’를 선보였다.
이날 발표에 나선 박상현 대표는 초기 챗GPT로 영어문제를 생성하는 시도 등에서 도출된 LLM의 한계를 언급하며 자체 데이터셋을 바탕으로 모델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설명했다. 문제는 초기 스타트업으로서 거대 언어모델을 훈련시킬 충분한 데이터셋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 결국 이들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한정된 데이터셋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고, 작지만 강력한 모델 여러 개를 큐파일럿에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큐파일럿은 퀄리티 높은 영어 문항을 싸고 빠르게 출제할 수 있도록 돕는 AI”라며 그 성과를 소개했다.
“특히 글의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에 활용되는 저희 자체 방법론의 경우 정확도가 97.8%를 기록하며 현재 시점 기준 전 세계 최고의 퍼포먼스를 달성했습니다. 이미 교육기업인 대성학원, 이투스, 이그잼포유 등이 큐파일럿을 도입했죠. 현재도 큐파일럿은 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루하루 더욱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업무 요청을 처리해주는 간편 연동 AI 에이전트를 표방한 ‘도슨티’의 발표 역시 주목을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과 일본 라인 등에서 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활약했던 이일구 대표를 비롯해 저마다 스타트업 창업 경험을 가진 공동창업자 2명이 의기투합한 도슨티는 이메일과 메시지 기반으로 업무 요청을 대신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다.
각 사업 분야에서 업체들의 매출을 높여주는데 초점을 맞춰 판매 문의 응대, 카톡 주문 정보 추출, 보험 문서 검토, 건설 기준 시방서 탐색 등 다양한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날 발표에 나선 이일구 도슨티 대표는 각 기업들이 고객들을 응대하는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정해진 답변이 아닌 상황에 따라 고객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도슨티’의 특장점을 사례 별로 소개했다. 이 대표는 “외부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연동하는 기술을 팁스 지원을 받아 개발했다”며 도슨티의 성과를 언급했다.
“LG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에 저희 제품을 SaaS로 제공해 선보였습니다. 365일, 24시간 대신 영업을 해주는 AI가 있다면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구매한다는 것을 확인했죠. 스마트스토어에서 활동하는 57만명의 셀러 중 2%의 셀러만 저희 고객으로 확보해도 월 20억원의 구독 매출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5년 뒤에는 일본과 미국 등의 셀러를 대상으로 도슨티를 제공해 월 200억원의 구독 매출을 만들려 합니다.”
한편 ‘슬랙(Slack) 기반 기업용 조직문화 솔루션, 아기고래’를 소개한 허밍버즈는 플러그인 기반의 B2B SaaS(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아기고래’는 Slack을 기반으로 사내 칭찬과 축하 메시지를 자동으로 수집·공유해, 원격 근무나 대규모 조직에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이 자연스럽게 오가도록 돕는다. 아기고래를 통해 조직문화(HR) 담당자는 번거로운 반복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구성원들은 더욱 건강한 협업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유시원 허밍버즈 대표의 설명이다.
이날 발표에 나선 유 대표는 “평생직장 개념이 없는 MZ 세대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성장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가차 없이 이탈하고 있다”며 “기업은 이들이 인정받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아기고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아기고래는 현재 센트비, 라포랩스, 바로고, 강남언니 등 30개 이상의 기업에서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칭찬 기능이 있는 웹 기반 HR 시스템을 이미 사용하고 있음에도 구성원 접근 차원에서 아기고래를 도입한 고객사 비율이 87%에 달한다.
유 대표는 “한 고객사의 경우 아기고래 도입 이후 HR 담당자의 업무 리소스가 15시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150인 규모의 고객사는 퇴사율이 20%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성과를 강조했다.
틈새시장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시장성을 입증한 커머스 스타트업들
이날 데모데이 스타트업 중 커머스 분야의 도전 사례를 소개해 주목을 끈 스타트업은 반려동물 신선식품 새벽배송 커머스 플랫폼 ‘주토피아프레시’와 낙후된 석재시장을 혁신하는 커머스 ‘봄찬’ 두 곳이다.
먼저 주토피아프레시의 경우 반려동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반려인을 위한 신선 펫푸드를 개발하고 이를 새벽배송으로 연결시켜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합배송과 새벽배송, 일반 택배를 모두 지원해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펫푸드를 받을 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자체 PB상품 개발을 통한 수출로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날 발표에 나선 김하유 주토피아프레시 대표는 자신 스스로를 “8년째 반려견 로또를 키우는 반려인”이라고 소개하며 “신선 펫푸드는 반려동물에게 보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글로벌에서는 이미 신선 펫푸드가 반려동물을 위한 건강한 식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회사가치 7조원으로 나스닥에 상장한 기업도 나올 정도죠. 즉 신선 펫푸드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국내에서는 신선 펫푸드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플랫폼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문성 있는 신선 펫푸드 브랜드를 직접 찾아 입점을 시켰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신선 펫푸드를 단독 입정시킨 상황이죠.”
현재 주토피아프레시에서 월 10만원 이상 사용 고객은 5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잠재고객은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 대표는 “고관여 소비자 5만명을 우선 확보하고 지속적인 제품 확장 및 PB상품 개발로 새로운 성장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며 포부를 밝혔다.
한편 석재 시장 커머스를 표방한 봄찬의 발표 역시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발표에 나선 봄찬의 박지흠 대표에 따르면 국내 석재 산업은 2조 1876억원이며 이중 수입 석재 시장이 72%에 달하는 1조 5750억원에 달한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석재 채굴 행위가 자연 훼손 우려로 엄격히 규제되고 있는 탓이다.
문제는 무거운 석재의 특성 상 배송 비용이 제품 가격을 넘어서며 유통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동일한 제품임에도 지역에 따라 혹은 주문 시점에 따라 가격 차가 크고, 지역 소규모 업체를 중심으로 영업망이 형성되는 탓에 불투명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봄찬은 이러한 시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석재 수량 별로 표준화된 단가를 적용, 투명성을 강화했다. 또 다양한 배송 시스템을 갖춰 20Kg 자갈부터 수톤에 달하는 바위까지 다양한 석재를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배송하는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석재의 다양성 문제, 인건비 문제 해결을 위해 동남아 제휴 공장에서 모든 작업을 완료하는 방법을 택했다”며 “문제를 해결하니 시장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1개월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했고, 지난해 연 매출 11억원 영업이익율 28%을 달성했다”며 성과를 언급했다.
현재 봄찬은 동남아 제휴 공장 합병을 통해 석재 생산을 내재화하고, D2C 커머스 플랫폼을 강화해 국내 뿐 아니라 북미와 호주 등 글로벌 판로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한편 이날 프라이머 25기 데모데이는 비건 요거트 ‘볼비’를 선보인 라이브어트, 일용직 인력관리 솔루션 ‘윙크’를 선보인 하울링을 비롯해 오렌지필드의 인도 시장 대상 운세·심리 상담 서비스 ‘시스터즈’, 플릭의 AI 콜센터 구축 솔루션 ‘복스에이아이’ 등이 연이어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