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혁명과 현대차 '귀족 노조'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산업 현장의 역사에서 노조는 자본가 계층에 유리했던 불합리한 산업 현장을 바로 잡고, 노동자 계층의 기본권을 쟁취했다는 상징성과 자부심이 있는 조직이었다. 과거형이다.

2021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볼 때, 산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준 선배들의 발자취에 힘 입어 노동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노동자의 범위도 생산직 근로자만 포함하는 것이 아닌 사무직 근로자 모두를 포괄하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 또한 향상됐다.

물론 최근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볼 수 있듯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도 아직 많다. 또 40대 네이버 개발자의 극단적 선택 등 직장내 갑질 문화 등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 노조가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다.

(사진=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그러나 현대자동차 노조의 행태는 좀 다른 결이 느껴진다. 사측의 입장이 아닌, 일부 국민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성 노조다. 그들에게는 '귀족 노조'라는 별칭이 늘 따라 붙는다.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들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됐다. 과연 일각에서 들리는 이러한 평가는 사측의 농간이나 언론플레이에 의한 평가절하일까.

8일 현대자동차 노조가 결국 파업을 결의했다.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결렬에 따른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 83.2%가 파업에 동의했다.

사측 입장 : 기본급 5만원 인상(호봉 승급분 포함), 성과급 100%+300만원, 품질 향상 격려금 200만원, 복지 포인트 10만원 지급 등

노조 입장 : 기본급 9만9000원 인상(정기·호봉 승급분 제외),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정년 연장(최장 만 64세), 국내 공장 일자리 유지 등

노조는 지난해 대기업과 공기업들이 임금을 인상하고 풍족한 성과급으로 직원의 사기를 진작시킬 때에도 임금 동결과 부족한 성과급을 받고 무분규로 교섭을 타결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게임업계 개발자에 대한 연봉인상 릴레이와 네이버, 카카오 등 IT업계의 연봉 인상 이슈를 의식한 듯 보인다. 그러면서 "더 이상 희생은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측은 이에 대해 정곡을 찔렀다. 하언태 현대차 사장은 지난 1일 담화문을 내고 "회사가 최고 수준의 임금·성과급을 제시했는데도 노조가 파업 수순을 되풀이하고 있어 유감"이라며 "인원과 원가 구조 자체가 제조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업체(전자·IT 업계)와 비교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냉정하게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이 미래 모빌리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첨단 산업이 세계 경제와 사회, 문화를 이끄는 시대다. 현대차 노조 입장에서는 안타깝지만 시대가 변했다. 그 변화에 발맞춰 움직이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수하란 말이 아니다.

과거 1800년대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노동자의 기계 파괴 운동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산업혁명으로 한 대의 기계가 여러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면서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실업자가 많아졌고 그 결과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져서 생활고가 심각했다. 노동자들은 이 원인을 기계의 탓으로 돌리고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결국 이 운동은 노동조합 결성의 시발점이 됐고, 오늘날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가져왔다.

1800년대 러다이트 운동 (이미지=위키피디아)

현 시점에서도 인공지능(AI), 로봇과 같은 첨단기술의 등장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장 자동화에 따라 생산직 노동자들은 일자리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공장을 파괴하거나, 파업으로 공장을 멈춰세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접어 들면서, 노동의 분야와 가치가 다양화됐다. 생산직 노동자만 '순수 노동자'는 아니란 것이다. 임원을 제외한 현대차의 평균 급여(연봉)는 9600만원이다.(단 지난해는 영업이익이 줄어들어 8800만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임원의 보수는 증가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물론 있다.)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이다. 다만 최근 이슈가 됐던 네이버의 평균연봉(1억 248만원), 카카오(1억 800만원) 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앞서 하언태 사장의 말 처럼, 인원과 원가 구조 자체가 제조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업체(전자·IT 업계)와 비교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의 시총은 이미 네이버와 카카오 보다 낮아졌다. 지난해 말까지는 네이버에게 간발의 차로 시총 순위를 내줬고 카카오 보다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이들 양사와 큰 격차로 벌어졌다. 글로벌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제조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2021년 7월 8일 기준 코스피 시총순위 (자료=네이버 증권)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는 변화해야 한다. 현대차에게는 세대교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난해 현대차는 전기 및 수소차,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 자율주행을 아우르는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 전략을 밝혔다. 제조업에 기반한 내연기관 완성차 업체로 꾸물거리다가는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생산직 보다는 연구개발직의 노동력에 무게 중심이 실릴 수 밖에 없다. 내연기관 차에 비해 부품수가 현저히 적은 전기차 생산에는 노동력 투입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임금이 저렴한 해외 공장 증설도 기업의 생존을 위해 진행해야 하는 숙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강성 노조에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차 내부의 문제지만, 시각을 달리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물론 이러한 노사 갈등은 현대차 내부의 문제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불똥이 소비자에게 전가되거나, 산업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진다.

노조의 복지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차량 가격은 비싸지고, 출고 지연이 심각해 지고, 심지어 글로벌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면…'오고 가는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 하나는 요즘의 화두인 MZ세대의 공정성 문제다. 기존 노조는 정년 연장을 외치고 있고, 현대차의 MZ세대 노동자는 이들에 대한 반발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년 연장은 장기 근속자에게만 유리할 뿐이며, 고연봉자 비중이 늘어나면서 저연차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차의 젊은 세대 직원들이 최근 사무연구직 노조를 출범한 이유도 MZ세대 직원들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도가 있다.

한 현대차 MZ세대 직원의 경우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노조는 선배 조합원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위치에 있으니 정년 요구에 불만을 가지지 말라는 말까지 하며, MZ세대의 미래 임금을 포기하려고 하고 있다'는 청원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AI 산업혁명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에서,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이러한 불합리한 노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감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존 현대차 노조 또한 현대차의 직원이다. 시대에 맞지 않고, 회사가 수용하기도 어려운 부분의 주장이나,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파업이 과연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 쟁의 행위인지 스스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효정 기자

hjkim@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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