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자동차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수소차와 전기차 성능을 두고 새삼스레 벌이고 있는 논쟁이 화제다.
기술력으로 대응하면 그만인 것을 말싸움까지 해가며 소셜미디어에 과시하는 것을 보면 마치 정치인들의 여론전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이 향후 3~4년 안에 본격화될 차세대 친환경 신차량 대체를 위한 준비 기간이며, 그런 만큼 자신들의 방식이 우수하다는 것을 소비자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정부가 전통적인 탄소배출 차량 규제를 시행하기 시작하면서 전기차량이나 수소 차량에 대한 논쟁이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자동차 업계의 주류는 어느새 전기차 위주의 생산모드로 흘러가는 듯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현대자동차와 도요타는 전기차에만 올인하지 않고 수소차로 함께 신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BMW가 내년에 수소SUV를 내놓는다며 전기차와 함께 수소차 본격참여 의지를 밝혔다. 그러자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 폭스바겐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이 회사를 두고 친환경적이 아니고 과학이 아니며, 심지어 엄청나게 멍청하다고 공공연히 깎아 내리기에 나섰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넷제로(탄소 무배출) 차량 주도권 전쟁을 벌이고 자동차 회사 최고 경영자들의 발언들은 시장 기선 제압 싸움 차원으로 읽힌다. 혹여 자신들이 올인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잠식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BMW, 현대·도요타 이어 수소전기차 3국지 예고
BMW는 지난달 27일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에서 개최한 독일 중앙 수소 서밋(Central German Hydrogen Summit) 행사 직후 발표문을 내놓았다. 여기서 BMW는 수소 사용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BMW 그룹은 “수소가 2030년까지 지속 가능한 이동성(탈 것)을 위한 미래 계획의 핵심 부분을 형성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는 폭스바겐그룹과 테슬라 등 전기차 올인 기업과 다른 병행전략이다.
특히나 이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BMW그룹이 이미 공장에서 수소연료전지를 트랙터와 지게차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발표문에서 부각시켰다는 점일 수 있다. 이제 이 분야에서도 꽤 준비가 됐다는 선언인 셈이다.
실제로 BMW는 지난 2013년 수소전기차로 가동하는 차량을 자사 제조공장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라이프치히 공장에서 현재 총 81대의 차량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곧 라이프치히 공장에 37대의 수소차를 추가해 독일 최대의 수소연료 물류차량의 본거지가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 회사는 라이프치히 공장에 네 번째 현장 수소 충전소를 설립했을 정도다.
한스페터 크렘서 BMW그룹 라이프치히 플랜트 이사는 “우리의 비전은 화석연료를 녹색 수소 형태의 미래 연료로 대체해 자동차생산을 완전히 탈탄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수소차 “놀랄 정도로 멍청하다” 비난
수소 연료 차량에 대한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 년 간 이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여러 자동차 기술 회사가 수소전기차를 지속 가능한 상용차의 미래로 꼽으면서 관심이 급속히 재점화되고 있다.
BMW가 수소전기차 참여를 선언한 것은 지난 2019년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에서다. 당시 BMW는 수소전기 컨셉카 ‘i 하이드로젠 넥스트’를 공개했다. 당시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은 “수소전기차 기술은 향후 수년 내에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며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기술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도 오랫동안 잠잠하던 BMW의 수소차가 다시 화제가 된 것은 지난달 12일 열린 BMW 연례 주총에서다. BMW는 내년에 수소연료전지 모델 SUV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이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수소연료차를 상용차로 확대하겠다는 수소차 본격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지난달 18일 헤르베르트 디에스 폭스바겐 자동차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트윗을 통해 BMW의 수소차 구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자신의 그룹은 전기차 개발에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재삼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트윗에서 “수소차는 기후 해결책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교통 부문에서는 전기가 널리 보급되어 왔다. 가짜 토론은 시간 낭비다. 과학에 귀기울여 달라!”며 견제구를 날렸다. 수소차는 “과학에 귀기울여 달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수소차는 비과학적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에 전기차의 대명사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맞장구치며 힘을 보탰다. 머스크는 이 트윗에 대해 “디에스가 맞다. 수소는 엄청나게 멍청한(staggeringly dumb) 자동차 에너지 저장 형태다. 가장 매력적인 사용처인 로켓 상단부 용으로도 거의 고려할 가치가 없다”며 수소차 폄하에 가세하는 직격탄을 날렸다.
대세인 전기차 흐름 속에서도 수소차 베팅 분위기 막지 못해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실행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연료 공급원으로 수소연료에 베팅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달 18일 아쿠아리우스 엔진은 아주 작은 22파운드(약 10kg)짜리 수소 엔진을 출시했다. 이 회사 측은 이 엔진이 비용이 많이 드는 수소 연료 전지에 대한 더 저렴한 대안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지난 1일 수소 연료를 한번 가득 채운 토요타 미라이(Mirai)를 1003km나 몰아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BMW는 수소차 연료전지 개발을 목표로 도요타와 제휴를 했다. 도요타는 자국의 녹색 성장 전략(Green Growth Strategy)으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 전략은 일본을 지속 가능성 추진에서 수소에 집중하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차와 일본 도요타가 경합하며 주도하고 있는 세계 수소연료 전지차 시장에 독일 BMW가 본격 가세 선언을 하고 폭스바겐과 테슬라CEO가 이를 의식할 정도가 되면서 이제 전기차 외에 수소연료전기차가 새삼 주목받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선수가 많으면 흥행판 구경꾼들이 재미있어지는 법이다. 치열한 경쟁은 기술발전을 가속화할 것이고 소비자들은 이익을 보게 된다.
세계 차세대 진환경 차 시장은 어느 면에서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세계 TV시장이 브라운관에서 평판TV로 바뀌던 상황에 견줄 수 있겠다. 당시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TV와 LCD TV 진영이 양립하다가 LCD TV로 결론났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물론 차세대 친환경차가 꼭 같으리란 법은 없고, 두 개 옵션 모두를 갖는 것이 비용이 더 드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둘 모두를 지니고 있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현대차와 도요타에 이어 BMW가 그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차세대 친환경 차량 전쟁은 어느쪽으로 굵은 물줄기를 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