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로?
위키피디아가 돈 받는 사이트로 바뀌게 된다. 물론 일반인은 무료고, 기업들에 한해 돈을 받는다. 최근 위키피디아는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위키백과 사용비 과금 협상을 진행 중이다. 위키미디어 재단의 자회사 위키미디어 LLC와 GAFA(Google·Apple·Facebook·Amazon)와의 합의는 이르면 6월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웹 2.0의 3가지 덕목으로 불리는 ‘참여’‘공유’‘개방’의 상징적 창조물이자 집단 지성의 산물로 꼽히는 위키피디아가 글로벌 IT공룡들로부터 사용료 납부를 전제로 협상중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위키미디어 재단의 깜짝 시도는 유료 위키미디어 엔터프라이즈 버전 서비스 뿐 아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위키백과 콘텐츠 웹호스팅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눈여겨 볼 점은 그 시작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글로벌 IT공룡이었다 하더라도, 전세계 다른 기업들로 확산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점이다.
구글, 위키피디아와의 프레너미였던 관계
GAFA로 불리는 미국의 글로벌 IT 빅4는 모두 위키백과 사전을 무료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위키미디어 엔터프라이즈(Wikimedia Enterprise)’ 출시는 이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위키피디아 자체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와 빅테크의 초기 인연은 구글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초부터 두 회사는 무언의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다. 위키피디아는 사용자 질의에 대응해 구글이 제공하는 정보를 생산하고, 구글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원천으로서 위키피디아의 명성을 쌓게 하는 데 일조했다.
물론 구글이 지식의 줄임말인 ‘놀(Knol)’이라는 어설픈 이름으로 위키피디아를 자체 사용자 제작 지식 항목으로 대체하려는 과감한 시도를 하는 등 충돌상황도 있었다. 구글은 놀의 주요 지식 항목 필자에게 광고비 일부를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양 측의 관계가 친구(Friend)이자 적(Enemy)인 프레너미(Frenemy) 관계였다는 얘기다.
구글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 이 시도 이후 위키피디아를 더욱 굳건히 받아들였다. 위키피디아를 자사가 전하는 지식 항목과 연결시켜 주는 것은 물론 위키피디아 결과 페이지에 있는 주요 발췌문을 재인쇄해 위키피디아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했다.
양 측은 지난 20여년 동안 함께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구글은 1조 달러(약 1133조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지만, 위키피디아는 개인 사용자들의 관용과 보조금을 주는 재단에 의존하면서 중간 규모 비영리 단체로 남아 있게 됐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위키피디아가 GAFA에 비용을 요구하는 배경과 향후 계획은
이 대목에서 위키피디아는 GAFA와의 관계를 재조정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GAFA가 자신들의 플랫폼과 인공지능(AI) 가상 비서를 운용하는 고객서비스를 하면서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위키피디아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위키미디어 재단이 상업적 제품인 ‘위키미디어 엔터프라이즈’를 만들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재단은 300개 이상의 언어로 된 위키피디아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이 새로운 서비스는 위키피디아의 콘텐츠를 IT공룡(그리고 결국엔 소규모 기업에게도)에 직접 판매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관계자는 “이 재단이 새로 설립한 자회사인 ‘위키미디어 LLC’와 빅테크 회사들 간의 대화가 이미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 두어 달은 위키피디아 수천 명의 위키피디아 자원 봉사자들의 반응을 구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는 위키미디어 LLC와 GAFA와의 합의는 이르면 6월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소규모 팀을 구성해 엔터프라이즈 프로젝트를 강화하고 있는 레인 베커 위키피디아 재단 수석이사는 “위키피디아 재단이 상업용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의 사용자라고 인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리는 그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을 사용자 기반으로 다루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위키피디아 “그동안 비용들여 GAFA가 쓸 수 있도록 지원”
위키피디아는 지난 몇 년 간 2주 마다 사이트에 나타나는 모든 것(사용자를 위한 이른바 ‘데이터 덤프’)의 스냅샷을 무료로 제공하고 모든 변경 사항 발생시 다른 포맷으로 제공하는 ‘소화 호스(firehose)’를 제공했다. 이는 대기업들이 위키미디어 재단의 특별한 도움없이도 위키피디아 콘텐츠를 그들의 플랫폼으로 끌어와 사용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베커 이사는 “그들은 모두 위키피디아 관리를 전담하는 팀을 보유하고 있다”며 “서로 다른 콘텐츠를 공유하려면 많은 낮은 수준의 작업, 청소 및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GAFA와의 위키피디아 콘텐츠 유료 사용 과금 배경 이야기는, 위키피디아의 당초 취지를 생각할 때 모양새가 떨어진다. 그러나 위키피디아 무료 옵션은 상업용 옵션을 포함한 모든 사용자들이 여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단 재정책임자 리사 자이츠 크루웰에 따르면 이는 위키미디어 엔터프라이즈의 주요 경쟁사는 위키피디아 그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료 버전 포맷 문제는 각 회사의 요구 사항에 맞춘 돈을 낼 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분명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예를 들어 위키미디어 엔터프라이즈는 실시간 변경 사항과 포괄적인 데이터 덤프를 호환 가능한 포맷으로 제공한다.
또한 이전까지의 (위키피디아 기사 작성)자원 봉사자 주도의 프로젝트에서는 전례가 없던 전형적 비즈니스 고객용 서비스 단계가 생기게 된다. 즉, 고객들이 전화할 수 있는 번호, 데이터 전달을 위한 특정 속도 보장, 특정한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할당된 전문가 팀을 두게된다.
무료로 시작한 위키피디아, 엔터프라이즈 버전 외에 AWS에 웹호스팅은 왜?
위키미디어 재단은 또 당초 무료 소프트웨어의 세계로 구상된 위키피디아 프로젝트에서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내놓는 데 이어 또다른 파괴를 시도한다.
즉, 위키미디어 재단은 “엔터프라이즈용 위키피디아 콘텐츠를 위키 프로젝트 자체 서버가 아닌 아마존 웹서비스(AWS)에서 호스팅할 것이며, 이는 고객의 요구를 더 잘 충족시킬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계획을 밝히고 있다.
재단은 설명 자료를 통해 이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애쓰면서 “재단은 (굳이)계약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또는 재정적으로 AWS 인프라를 이용할 의무는 없다”고 강조했다.
위키피디아 운동도 결국 상업주의에 휘말리다
위키피디아 운동은 초기의 인터넷 이상주의를 자랑스럽게 고수해 왔지만 이제 거대 상업 기업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그들은 무료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뿐 아니라 투명성과 사용자들을 통해 수익을 내는 데 대해서도 아주 다른 규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재단 관계자들은 “(우리가) 거대 IT기업들이 기사(지식항목)를 읽을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어리석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엔터프라이즈가 더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상업 운영자들은 가장 정확한 최신 버전의 기사를 표시하고 반달리즘(무분별한 낙서등 문화파괴)을 더 빨리 단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이츠 그루웰 위키미디어 재정책임자는 “기업은 벌목꾼이 나무를 심는 것처럼 자신들(기업들)이 의존하는 자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요구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위키피디아는 계약을 이용해 특정한 방법으로 인정받거나 자원 봉사자들을 사이트로 안내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위키재단, “엔터프라이즈가 큰 자금조달처는 아니지만 수익증대 필요”
위키미디어 재단은 “엔터프라이즈가 재단의 약 1억 달러(약 1130억원) 규모의 예산에 대한 주요 자금 조달처가 될 것으로는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자이츠 그루웰 재정담당 책임자는 “지원금으로 보충되는 사용자들의 기부금이 여전히 대부분의 재단 운영부담금이 되겠지만 기업들로부터 안정적인 추가 수익 흐름을 얻는 것은 재단에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2030년에 ‘자유 지식’으로 전세계 더 많은 지역에 도달하기 위한 야심찬 구상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 앞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큰 일이 있다”며 “이는 수익 증대를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빅테크에게 사용료 받으면서 상업적 요구에 휘둘릴 부작용 우려도
자존심을 갖고 실리콘 밸리에서 끝까지 버티던 위키미디어 재단은 GAFA로 대변되는 빅 플랫폼이 온라인 상거래와 정보의 흐름을 통제할 것임을 인정하고 이익을 얻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같은 프로젝트 등이 빅테크 자금을 지원받으면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겠지만 이들에게 대한 의존성이 생기는 부작용도 피할 수 없다.
결국 위키피디아는 비록 더 좋고, 더 강하고, 더 다양한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물론 선의로) 상당한 금액을 받고 제공되지만 필연적으로 상업 인터넷의 요구에 부응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는 자발적 봉사자들이 세계를 묘사해 온 20년 이상 누적된 비상업적 이상을 실현한다는 이상을 실현해 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반면에 빅 테크들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가져가고 나중에 허가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욕심을 채워왔다.
위키미디어 재단이 빅테크와 합의하고 노골적인 관계를 시작하기로 한 결정은 지금까지의 무언의 협력 관계와 달리 상업적 세계의 가치,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이 지배하게 될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하는 세계에 발을 담궜다는 의미다.
와이어드는 “위키백과가 거대 IT공룡들의 자금 유입 제안을 거부하고, 원칙에 입각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새 고층건물 건축을 계획하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큰 수표를 거절하는 집주인들처럼 혼란스럽고 고집스럽게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럴 경우 대개 빌딩은 그대로 올라가지만 그 집은 과거의 유물로 그 빌딩의 그늘에 앉아 있게 되며, 개발을 거부한 주인은 보상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라는 말로 위키미디어 재단의 입장을 설명했다.
위키미디어 재단의 선택은 결국 수십 년 만에 위키피디아가 상업적 개발 세력과 함께 일하는 것을 선택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