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방통신위원회(FCC)가 미의회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표면상 이유는 FCC가 지난달 29일 독자적인 ‘위성 탈궤도 규칙(satellite de-orbit rule)’을 단독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지구저궤도상의 우주쓰레기 처리 기한을 기존의 25년에서 5년으로 크게 줄이기로 표결해 시행키로 했다. 지구 저궤도가 꽉 차 가고 있어 필요한 조치다.
문제는 이게 그동안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담당해 왔던 일이라는 점이다. 이게 너무 느슨하다며 FCC가 끼어들어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미 의회 과학위원회와 우주항공 소위 의원들은 우주에 관한 한 나사가 주관청이며, FCC가 의회로부터 그런 규칙 제정 권한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5년으로 규정된 위성 탈궤도 규칙은 미 하원 의원들이 FCC 권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통과됐다.
그간 우주에 관한 국제 협력과 조정을 맡아 온 것은 나사였기에 다소 생뚱맞은 상황이다. 하지만 법규 제정 주체가 누구건 간에 규제가 강화됐기에 관심을 갖고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도 위성을 띄우기 위해 미국 스페이스X 로켓에 크게 의존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FCC, “우주쓰레기 5년 이상 궤도 방치 불가” 규칙 통과
미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지구저궤도(LEO) 위성사업자는 서비스 중단 후 5년 내 궤도에서 이탈시켜야 한다는 우주 파편(쓰레기) 최소화를 목표로 하는 규칙(rules)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른 바 ‘위성 탈궤도 규칙(satellite de-orbit rule)’이다.
FCC는 보도자료를 통해 “새로운 규칙은 발사된 후 궤도를 이탈한 인공위성의 사후임무(처리)와 관련해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온 25년 지침을 (5년으로) 줄이면서 우주 안전과 궤도 쓰레기 정책에서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는 중요한 단계를 밟았다”고 밝혔다.
위성 서비스 종료 후 5년이면 궤도에서 이탈시키도록 처리하는 이 새로운 규정은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1990년대에 제안된 나사의 권고에 기초한 현행 25년 기준이 크게 강화된 것이다.
FCC는 이 규정을 “(지상에서) 2000km 이하의 지구 저궤도(LEO) 지역에서 임무를 종료하거나 통과하는 우주정거장에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외 인정 인공위성, 그리고 의회와의 충돌
FCC의 이 새로운 규정은 이미 이미 궤도에 진입해 있는 위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FCC에 의해 이미 승인됐지만 아직 발사되지 않은 인공위성의 경우 2년의 예외인정 기간을 두기로 했다.
LEO 위성은 더 높은 고도에 있는 위성들보다 더 빨리 궤도 밖으로 이탈할 수 있다. 일례로 3,000기 이상의 LEO 위성을 발사한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은 수개월 정도 걸리는 궤도 이탈 과정을 사용한다.
문제는 이 규칙 제정 과정에서 FCC의 규칙 시행 권한과 나사 지침 간 충돌 가능성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발표에 앞서 지난달 27일 미 하원 과학기술위원회와 우주항공소위원회 지도자들은 “일방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FCC의 제안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제시카 로젠워셀 FCC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과학위원회와 우리 우주항공 분과위원회의 초당적 지도부가 지난 2020년 4월 귀하의 전임자에게 썼듯이 FCC는 의회로부터 명확한 권한을 받지 않았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사실로 남아 있다”고 썼다.
몇 주 전 발표된 FCC 규칙 초안은 FCC가 이미 “위성 통신 시스템의 인가에 의해 공익에 도움이 될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에 따라 2004년에 궤도 쓰레기에 대한 포괄적 규칙을 채택했다”고 말하고 있다.
FCC는 “궤도에서의 위성 및 운영 유형의 엄청난 증가세를 더 잘 반영하기 위해 궤도 잔해(쓰레기) 규칙에 대한 포괄적 업데이트에 대한 의견을 구한 후” 새로운 5년 규칙 초안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수십년 동안 우주쓰레기 국제 조정 담당해온 나사 제치두고
미 하원의원들은 로젠워셀 FCC의장에게 “나사는 국제적으로 수십년 동안 다른 국가의 우주 기관들과 함께 우주 쓰레기 줄이기 지침에 대한 조정을 주도해 왔다”고 썼다. 이 서한은 나사도 미국 정부의 궤도 쓰레기 기준을 재평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미 연방 정부 내에서 기관들은 연방 정부와 나사가 주도하는 과학 및 기술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궤도 쓰레기 저감 표준 및 관행을 따른다. 또한 나사는 그러한 표준을 재평가하는 책임을 맡아 왔으며, 이 시점에서 FCC의 조치는 미국의 지침에 상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원들은 “이 시기에 의회로부터 명확한 권한을 받지 않은 FCC의 규제 조치는 적어도 혼란을 야기하고 FCC의 업무를 저해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미국의 경제 경쟁력과 우주에서의 리더십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편지를 보낸 미하원 의원은 에디 버니스 존슨 과학위원회 위원장(민주·텍사스)과 프랭크 루카스 위원회 간사(공화·오클라호마), 돈 바이어 우주항공 소위 위원장(민주·버지니아), 브라이언 배빈 소위 간사(공화·텍사스) 등이다.
나사 대변인은 이날 FCC 투표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지만, 지난 2019년 4월과 2020년 10월 FCC의 궤도 쓰레기 회의 기록에 의견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FCC는 나사의 “5년 규칙이 나사 과학임무이사회(SMD)의 큐브 위성 임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주목했다.
FCC는 특정 고도에서 5년 요건이 “과도하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우려를 처리하기 위해 FCC의 계획은 특히 과학 연구 임무의 경우 사례별로 5년 규칙 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나사는 명시적으로 FCC 규칙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지난 2019년 논평에서 “나사 분석에 따르면 단기 운영 우주선이 25년 규칙을 고수하는 한 궤도 환경에 크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FCC의장, “25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로젠워셀 FCC의장은 투표에 대한 성명에서 “더 이상 [25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특히 지구 저궤도에서...두 번째 우주 시대가 왔다. 그것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주 혁신이 계속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청소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5년(내 우주쓰레기 제거) 규칙은 궤도 위성 쓰레기와 우주통신 장애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충돌의 위험을 줄이고 책임을 더 많이 지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회사들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달 말 제출된 서류에 따르면 “인공위성 회사들은 사소한 변화를 추구했지만 5년 규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주 FCC 직원들과의 회의에서 미 위성 산업 협회(Satellite Industry Association) 관계자들은 업계가 5년이라는 탈궤도 일정표 개념을 지지하고 있으며 개별 기업들이 [최선의 구현 방법]에 대한 질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위성 회사 원웹, 에코스타, SES 등은 모두 “궤도 쓰레기 완화에 대한 위원회의 전반적인 조치를 지지하며 지구궤도를 보존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큰 걸음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궤도에 통신위성을 쏘아올리는 미국 회사들이 어찌 FCC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을까. 게다가 이것이 외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로까지 작용할 수 있는 마당이다.
실제로 우주인터넷용 스타링크 인공위성 운영사인 스페이스X는 지난달말 FCC의 5년 규정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스페이스X는 “우리는 이 규칙 초안이 미국과 비미국 면허 사업자에게 동등하게 적용돼 오랫동안 지연된 외국 사업자에 대한 허점을 좁히는 노력을 시작한 것을 특히 높이 평가한다”고 썼다. 또 “너무 오랫동안, 미국 면허가 없는 사업자들은 이 허점을 반복적으로 무기화해 자신들의 고위험 시스템에 대한 정밀 조사를 피하면서 미국 사업자와 미국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쳤다. 우리는 FCC가 다음 단계를 밟아 외국인 운영자의 허점을 완전히 닫을 것을 촉구한다”고도 밝혔다.
FCC위원들의 생각은 충돌로 ‘우주 쓰레기 대량 발생’ 우려
이날 FCC의 우주 쓰레기 규칙 투표에 로젠워셀 의장과 뜻을 함께 한 사람은 민주당 제프리 스타크스 위원과 공화당 브렌던 카 위원, 네이선 시밍턴 위원이었다.
스타크스는 나사가 진행 중인 작업과 미 의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FCC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부 전체와 협력해야 하며 우리는 국가의 집단적 전문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전에 활용 방법이 부족하지 않은 라이선스 권한 기관으로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스타크스 위원은 또 “수천 개의 새로운 인공위성이 매년 발사되고 5년, 10년, 15년마다 대체되지만 임무가 끝나면 소멸하는 데 25년이 걸린다면 우주 쓰레기 축적률은 빠르게 증가할 것이고 아마도 지속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붐비는 궤도에 더 많은 물체가 더 오래 남아 있으면 잠재적으로 더 많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각각의 충돌은 엄청난 양의 파편을 발생시켜 그 사이클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 위원은 이날 조치에 대해 “훌륭한 진행 방식”이라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FCC가 여기서 혼자 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회의감을 표시해 왔다...우리는 이것을 알리기 위해 실제로 로켓 과학자들을 가지고 있는 다른 기관들의 전문성에 기대고 있는지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밍턴 위원은 “앞으로 10년 동안 상업 위성 운영자들은 수만 개의 새로운 인공위성을 궤도에 쏘아 올릴 계획이다. 나는 이번 명령이 우주 경제에 대한 새로운 규제 접근, 즉 엄격하고 합리적이며 성능에 기반을 둔 규칙의 새벽이기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규칙들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혁신적인 우주 경제의 토대를 형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FCC, 우주쓰레기 정책 주도권 잡으려?
그런데 정작 나사는 우주쓰레기 문제에 대해 손놓고 있었을까?
스페이스뉴스에 따르면 FCC의 임무를 마친 위성 폐기(궤도 이탈) 움직임은 나사가 지난 7월 미과학기술정책청(OSTP)이 발표한 국가 궤도파편 이행계획(National Orbital Drables Implementation Plan)에 의해 명령된 연방정부의 궤도파편 완화 표준관행(Standard Practices)에 대한 검토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이 검토에는 해당 문서에 있는 임무가 끝난 위성의 궤도를 이탈시키는 연한인 25년을 단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기 연구’가 포함돼 있다.
앞서 지난달 29일 하와이에서 열린 ‘첨단 마우이 광학 및 우주 감시 기술(AMOS)’ 회의에서 OSTP의 우주 정책 부국장인 에진 우조-오코로는 FCC의 명령이 반드시 진행 중인 검토와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FCC는 기관 간 궤도 잔해 작업 그룹의 일부이며 계속해서 그 일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별도의 노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25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우리는 업데이트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나사역시 이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하려고 검토 중인 가운데 FCC가 발빠르게 나선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주인터넷 사업이 인기를 끌면서 저궤도 위성을 발사하려는 통신회사가 많아졌다게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배경이다. 이에 대한 규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물론 우주쓰레기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기에 관련 규제는 FCC의 책무이기도 하다.
어쨌든 미정부 기관간에 벌어지는 강화된 우주쓰레기 규제 규칙에 대해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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