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이 하는 리서치 = 리서치의 밥그릇 뺏기?

언젠가 쓰겠다고 생각한 주제인데요, ‘리서치 민주화(Democratizing UX Research)’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리서치 민주화의 아이디어는 UX리서처만 리서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리서치에 참여하거나 부분 혹은 전체를 진행하는 것을 권장, 장려해서 리서치를 ‘대중화’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조직 전체에 더 많은 사용자 경험 관련 인풋이 흐를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죠. PM, PO 같은 고객 관련 의사결정에 관련된 직군뿐만 아니라 개발자, 콘텐츠 제작자 등 누구든 리서치를 하도록 만듦으로써요. 오늘의 집 리서처 박재현님이 잘 정리해주신 글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리서치에서 조직의 참여를 가장 높은 리서치 성과로 생각하는 1인입니다. 리서치 민주화’라는 키워드 자체가 너무 넓지만, 이해관계자를 리서치 과정에 적극 끌어들인다는 맥락에서, 리서치 민주화에 대한 몇 가지 의견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전문성을 PM에게 넘겨주고 우리 직업을 없애고 있습니다.

UX리서처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직군과 밥그릇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이끄는 것입니다. 밥그릇에 대한 우려는 ‘역할’과 ‘영역’의 구분의 혼동에서 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역할’이지 ‘업무 영역’ 이 아닙니다. 개발자가 기획이나 디자인에 대해 코멘트를 할 수 없고,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면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리서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성 테스트를 누가 진행했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공하고자 하는 사용자 경험(목표)에 가까워지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이 중요하죠. 앞서 말한 것처럼 리서처는 ‘그들이’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고요.

정말 밥그릇을 지키고 싶다면 업무(테스크)를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 나눌 게 아니라 ‘의사결정권’을 분명히 하면 됩니다. 모두가 사용자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용자 목소리를 듣고, 리서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지만

  • 리서처는 리서치를 어떤 방식으로 수행할지, 어떻게 진행할지를 결정하고
  • 기획/PM 등은 이를 바탕으로 어떤 스펙이 들어갈 것인지 결정하고
  • 디자이너는 이를 어떻게 디자인으로 녹일지 결정하면 됩니다.

출처 : 픽사베이

도구와 기술이 발전하고, 사업이 임팩트를 내는 데 있어 ‘단지 하는 것’ 보다 ‘문제 정의’가 중요해지면서 IT조직에서 업무 ‘영역’ 은 점점 희석되고 있습니다. ‘나만의 영역’을 고수해서는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없습니다. 다들 뛰어난 인재가 모였다고,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고 믿는다면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내 영역을 어떻게 서로 현명하게 나눠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모두가 리서치에 참여하면, 인사이트 품질이 낮아지고, UX 리서치나 UX 리서처에 갖는 신뢰나 가치가 내려갈 위험이 있습니다.

리서치 민주화는 똑딱이 버튼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혁명도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UX이해도가 낮은 구성원에게 UT를 시키고, Grounded Theory 같은 것을 설명해주면서 리서치 결과를 분석하라고 요구하면 당연히 처참한 인사이트와 질 낮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리서치 민주화의 과정은 혁명보다는 디지털 프로덕트의 발전과 비슷합니다. 일단 최소한의 기능으로 작게 출시시키고(MVP), 시장과 사용자의 니즈를 봐가면서 점점 성장시키는 것이죠. 처음에는 가볍게 인터뷰에 참석시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좋은 질문법을 익힐 수도 있고, 서베이를 같이 만들거나 포스트잇을 이리저리 같이 움직이는 정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인내심을 요합니다. 심지어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충분히 많은 사람에게 퍼뜨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세요. 정말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UX 리서치가 왜 필요한지’만 안다면 일이 잘 굴러갈까요? 아니면 직접 해보고 그 과정에 참여해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 더 잘될까요? 우리의 제품 설계 책임자가 UX 리서치의 필요성을 옹호해주는 것뿐 아니라 리서처가 놓칠 수 있는 제품 전략/사업전략에서의 관점을 리서치에 녹여준다면 정말 멋진 일 아닐까요? (저는 종종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짜릿하더군요.)

직군과 상관없이 훌륭한 시니어는 주니어 팀원의 성장을 책임집니다. 주니어를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이런저런 권한을 위임해가며 구성원의 능력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바빠 죽겠는데, 귀한 시간을 써서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방식이 시간을 훨씬 절약하기 때문입니다. 시니어 한 명이 1시간을 들여 주니어가 한 달에 1시간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해봅시다. 주니어가 10명 있는 팀은 일 년에 120시간을 절약합니다. 시니어의 12시간으로 말이죠. 시니어 또한 리소스가 여백을 활용해 자신의 성장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직에서 UX, UX 리서치 시니어입니다. 우리는 그들은 ‘교육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UX성숙도를 높여야 하는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UX 리서치로 훨씬 큰 임팩트를 내고 싶다면요. ‘리서처가 아닌 사람을 위해 트레이닝을 진행할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막상 해보면 일주일에 한 시간,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세션을 갖는 것만으로 생각보다 큰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팀원들이 처음 고객 인터뷰에 참가하는 것부터, 다 같이 유저 저니 맵을 만드는 활동을 하게 되는 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가끔 팀원들이 고객 인터뷰에서 엉뚱한 질문 ( ~를 쓸 것 같으세요?)을 던져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말해서, 그것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논문을 쓰긴 어렵겠지만요. 오히려 엉뚱한 질문이 왜 나왔는지 서로 이야기하면서 고객에 대한 이해를 서로 높이고, 그들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리서치 팀에서는 단순 사용성 평가나 단발성 리서치보다 전략적 리서치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한 가지 얹고 싶은데, UX리서처만 있다면 좋은 전략적 결과를 만드는 리서치를 수행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하게 평가해봅시다. 리서처들은 보통 여러 영역에 재능이 있고, 아는 것도 많습니다. 디자인을 할 줄 아는 리서처, 마케팅 이해도가 높은 리서처, 비즈니스 관점을 잘 아는 리서처도 많습니다. 그러나..

  • 제품 개발 리더/ 사업 전략 리더가 리서처보다 ‘제품/사업 전략 결정’을 잘하고 관련 맥락을 잘 압니다.
  • 기획자는 리서처보다 ‘기획에 관련된 결정’을 잘하고 관련된 맥락을 잘 압니다.
  • 디자이너는 리서처보다 ‘디자인데 관련된 결정’을 잘하고 관련된 맥락을 잘 압니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리서치 스킬이 좋을지언정 ‘그들만큼 높은 이해도/맥락’을 가지고 리서치 결과를 분석할 수 없고, 그들만큼 결과를 실제 행동에 잘 녹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 가장 좋은 전략은 그들의 경험과 역량을 레버리지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리서치에 적극 끌어들여 그들의 경험과 역량을 ‘이용해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들의 시선을 리서치에 담고 그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던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리서치 결과가 풍부해지고 그들이 리서치 결과를 최대한 뽕뽑게 하면서 목표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조직 내 AI 기술을 사용자 경험 전략에 녹이는 리서치, 사용자 경험을 토대로 비즈니스 전략을 검증해보는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엔지니어 혹은 사업 개발 리더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맥락을 흡수하고, (귀찮게 만들고 ㅎ) 그들을 리서치에 끌어들임으로써 좋은 의사결정을 이끌어 낸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리서처는 누구보다도 크로스펑셔널한 커뮤니케이션에 능해야 합니다.

끝으로, 리서치 민주화의 장점으로 ‘리서처 업무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되고, 다양한 프로덕트 팀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는 의견이 있더군요. 저는 ‘업무 영역’을 한정 짓지 않아 다양한 팀원들과 깊은 협업관계를 맺을 수 있어 신뢰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단점 아닌 단점은.. 다들 리서치를 보는 눈이 높아지고, 점점 깐깐해진다는 것입니다. 예리한 그들의 눈에 리서치 킥오프를 할 때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립니다.

결론은 ‘리서치 민주화, 참 좋다, 무척 어렵지만’입니다. 이 글을 읽는 리서치 담당자(리서처가 아니더라도)가 있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리서치 부담을 슬쩍슬쩍 한 스푼씩, 탈 나지 않을 정도로만 동료들에게 넘겨주세요.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은 무척 어렵고, 이 한 스푼을 조절하는 것이 제가 늘 도전하고 있는 과제입니다.) 당신을 더욱 신뢰하고, 감사하고, 당신과 동료의 공동의 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의 원문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바다김

jyee5001@g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저작권자 © Tech42 - Tech Journalism by AI 테크42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비전프로 국내 출시에 앞서... (지난 반년의 경험, 그리고 비전 OS 2의 가능성)

애플의 증강현실(AR) 헤드셋 ‘비전 프로’가 11월 15일 드디어 국내 시장에 출시됩니다. 비전 프로는 지난 2월 미국에서 첫 출시된 이후 주요...

디지털 아트의 딜레마, 즐거움과 깊이 사이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의 가능성과 한계 디지털 아트의 전시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에서 화려한 시각 효과와 감각적 체험을 통해 관람객에게...

페이스북과 구글 뉴스 우선순위 하락에 대응하는 BBC와 The Hill의 트래픽 전략[2024년 버전]

페이스북과 구글 뉴스 우선순위 하락에 대응하는 BBC와 The Hill의 트래픽 전략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영미권 언론사들은 페이스북과 구글 등 주요 플랫폼이...

도요타가 만들고 아마존이 따라한 '린(Lean) 방식'

‘린 생산 방식’은 1950년대 일본에서 처음 탄생한 것으로 ‘군살 없는 생산방식’이란 뜻입니다. 한 마디로 제조과정에서 낭비를 없애고 생산성을 높이는 건데요. 이는 도요타가 세계 1, 2위를 다투던 GM과 포드를 따라잡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