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닷컴의 물류 포기는 시작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SSG 다운! 더 싸울 수 없습니다

신세계그룹이 CJ그룹과 손잡고 전방위적인 협업을 추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협업의 핵심은 물류인데요. 특히 SSG닷컴의 물류센터를 CJ대한통운에게 이관하기로 한 결정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물류 기능의 축소는 사실상 이커머스 대권 레이스를 포기한다는 선언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SSG닷컴과 G마켓이 현재 시장 3위 자리를 지키는 데도 힘겨워 보이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물러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협업이 쿠팡을 향한 도전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보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신세계그룹 전체가 현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러한데요. 다만 이와 같은 악재가 아니었더라도, SSG닷컴의 물류는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SSG닷컴이 출발점부터 어떤 잘못된 판단을 하였고, 왜 이렇게 손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동화의 덫에 걸려버렸습니다

SSG닷컴이 운영했던 물류센터 네오는 국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인프라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주문에서 배송 준비까지의 전 과정 중 80%를 자동화 공정으로 운영하여, 압도적인 물류 효율을 자랑했는데요. 이를 여전히 노동집약적인 쿠팡의 물류센터와 비교하며, SSG닷컴이 최종 승자가 될 거라고 예견한 전문가들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사실 물류센터의 자동화는 아주 치명적인 단점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요. 초기 투자 비용은 과도한데 반해, 운영 유연성은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100%의 가동률을 늘 유지해도, 손익 분기점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객의 주문 수요는 늘 일정하지 않고 가변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물량의 변화를 자동화 센터는 바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유통 기업이 보유한 자동화 물류센터 가동률은 60%도 안된다고 합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밝히기로는 네오는 한계치에 근접한 가동률을 기록 중이라고 하고요. 부족한 부분은 매장 기반의 PP센터를 적극 활용하여 보완 중이라고 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PP센터는 규제로 인하여 새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결과적으로 SSG닷컴의 전체 물류 투자 대비 효율은 그리 좋지 못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는 물류센터 자동화에 대한 신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상황의 막막함을 더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요. SSG닷컴에 따르면, 세 곳의 네오 센터를 통해 하루 8만 건 가량의 주문이 처리된다고 합니다. 오픈서베이의 온라인 식료품 구매 트렌드 리포트 2023에 따르면, SSG닷컴의 1회 평균 구매 금액은 57,300원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자동화 물류센터를 통해 약 5%의 수익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1년에 700억 원 정도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형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하나 짓는데 최소 3,000억 원 이상이 든다는 걸 감안하면, 회수까지 얼마나 걸릴지 막막한 수준입니다. 더욱이 현재 기준으로는 SSG닷컴은 EBITDA 마진이 마이너스인 상황이니, 네오의 존재가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이에 반해 쿠팡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연성이 큰 인력 중심의 물류센터를 일단 구축하고요. 빠르게 이를 확장시켜 초기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덕분에 규모의 경제를 조기에 구현하여, 잘 알려져 있듯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자동화 물류센터를 도입하면서 추가적인 효율성 개선에 나서고 있고요. 이는 새벽배송 경쟁자 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창기 물류 인프라 투자는 최소화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자 전환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마 상상해 보자면, 신세계 그룹 내부에서 대기업답게 대규모 시설 투자로 경쟁자를 빠르게 따라잡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닐까 싶긴 한데요. 투자의 순서와 방식이 다소 적절치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본래 계획대로 빠르게 네오를 늘려, 쿠팡 못지않게 규모의 경제를 빠르게 구현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요.

앞으로의 시장 변화를 예측한다면

그렇다면 또 다른 당사자 CJ대한통운의 상황은 어떨까요? 영 상황이 좋지 못한 SSG닷컴과 달리, 이번 협업은 CJ대한통운에게는 상당한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CJ대한통운은 기업의 명운을 걸고, 쿠팡과 택배 시장 점유율 경쟁을 하는 중이었는데요.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한 동시에, 첨단 물류센터를 추가로 보유하게 되어 풀필먼트 사업 역시 더 적극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진 등 2위 이하 사업자와 달리, 쿠팡의 돌풍 속에서도 최소한의 입지는 지킬 가능성이 크고요.

반면에 플랫폼 측면에서는 쿠팡을 견제하는 힘이 어쩔 수 없이 약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CJ대한통운의 힘을 빌려, 쿠팡과의 물류 역량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걸로 보이지만요.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라, 플랫폼 체질 개선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더욱이 SSG닷컴 이외에도 11번가 역시 자체 물류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 시장의 경쟁 구도는 더 쿠팡에게 유리해질 겁니다.

여기서 그나마 남은 변수는 여전히 여력이 존재하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의 테크 기업들입니다. 이들이 쿠팡 로켓배송과 같은 직매입 확대에 베팅하고, 한숨 돌린 CJ대한통운과 연합 전선을 형성한다면, 분명 쿠팡의 질주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스를 이탈한 SSG닷컴을 대신할 새로운 선수가 등장할지, 아니면 이대로 쿠팡의 점유율이 별문제 없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을지, 업데이트되는 소식이 있다면 다시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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